[동창회 70년사 속으로] 정상으로 가는 단계를 밟다, 초창기 총동창회 활동
페이지 정보
작성일26-03-03 10:48 조회 60회 댓글 0건본문
▲통합 당시 영남대학교 대명동 캠퍼스 전경(1967) ▲동창회 통합기사(『영대신문』, 1969)
본 내용은 지난해 발간된 ‘총동창회 70년사’에 수록된 ‘제2장 ― 정상으로 가는 단계를 밟다, 초창기 총동창회 활동’ 편을 정리하였습니다.
▲1969~1971 : 통합 동창회 출범 및 조직 정비
영남대학교 총동창회는 1967년 대구대학과 청구대학 통합 이후 2~3년간 통합 과정에서 배태된 갈등으로 인해 동창회의 본질적 활동은 침체 현상을 면치 못했었다. 그러나 1969년 2월 23일 대국적 입장에서 통합 동창회로 출범하였다. 동창회의 규모가 확장된 만큼 최우선 사업으로 회원 소재 파악과 연락을 도모하기 위해 회원명부를 만들기로 하였다. 1969년 7월 18일에 「동창회명부발간위원회」를 구성하여 1970년 2월 25일 처음으로 『동창회 명부』를 발간하였다.
그러나 총동창회가 출범하고도 한동안 실적이 부진하였다. 이는 양교 동창회의 통합 추진과 그에 따른 후유증 해소에 부심한 나머지 실질적인 동창회 사업을 하지 못하게 된 데 그 요인이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총동창회가 발족된 후 1년이 지난 1970년 3월 27일에 제2대 회장단 선출을 위한 정기총회가 대명동 본부 도서관 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 이날 총회에서 2대 회장으로 정지철(51.법학), 부회장에는 김용한(51졸.정치), 이길우(55졸.법학), 도영대(58졸.정치) 동문이 선출되었다. 이날 총회에서는 당해 연도 사업계획으로 체육 특기자를 위주로 모교 장학기금 육성, 모교에 도서 기증, 경산 캠퍼스에 기념탑 건립, 동창회관 건립(특별사업) 등을 결정하였다. 또한 3월 29일 열린 제3회 이사회에서는 사무국장 고영중 외 5인의 총동창회 사무국 인원을 인준하고, 6월 1일부터는 업무 집행의 원활함과 회원의 유기적 연락을 목적으로 대구백화점 7층에 총동창회 상설사무국을 설치하였다. 이외에도 총동창회기(總同窓會旗), 축기(祝旗), 조기(弔旗) 등의 도안을 영남대 박성규(상학), 장석수(응미) 교수에게 의뢰하였다.
▲총동창회·대학 좌담회
1970년 7월 14일에는 영남대학교 총장실에서 동창회 사업계획 전반에 대한 ‘총동창회·대학 좌담회’가 개최되었다. 대학에서는 이선근 총장을 비롯한 3명의 교무위원이 참석하였으며, 총동창회에서는 정지철 회장을 비롯한 김용환 부회장, 한종태 사업 간사, 고영중 사무국장이 참석하였다.
이날 논의된 내용은 ▲첫째, 총동창회의 획기적 발전을 위하여 총동창회관 건립 연차계획을 수립 추진한다. ▲둘째, 조직 강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체계 확립을 위해 직장별, 직능별 「분회 조직」을 추진한다. ▲셋째, 회원 상호 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연말연시 교례회를 개최한다. ▲넷째, 모교의 전통 선양과 체육진흥을 위해 ‘체육진흥장학금제도’ 설치를 추진한다. ▲다섯째, 모교 재학생의 면학을 위해 도서관 내에 ‘동창 문고’를 설치한다. ▲여섯째, 모교 이념과 위용을 살리기 위한 ‘기념 천마탑’ 건립추진의 모든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총동창회는 실질적인 동창회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빠르게 조직을 정비하고, 모교와 총동창회 발전을 위한 사업을 기획하여 추진해 나갔다. 이에 호응하여 1971년 2월 22일의 졸업식에서는 졸업생들이 총동창회관 건립에 138만 2,000원, 모교에 남길 기념품으로 ‘천마 심볼탑 건축기금’ 40여만 원을 기탁하였다. 총동창회에서는 기존 예산 150만 원에 건축기금을 합쳐 천마 심볼탑 건축에 착수하기로 하였다.
▶1971년 3월 28일 대명동 도서관 회의실에서 열린 총회에서는 제3대 회장단으로 회장 강재구(48.정외)와 부회장 서복섭(52졸.법학), 이길우(55졸.법학), 안유호(60.법학) 등을 선출하였다. 그리고 당해 연도 사업으로 동창회관 건립 3년 계획의 계속 추진, 직장별·직능별·지역별 분회 조직의 결성 추진, 영남대 캠퍼스에 회원기념 식수 실시, 회원 친목을 위한 야유회 및 연말연시 교례회 실시, 모교의 각종 행사에 적극적인 협조, 임원회비 및 일반회비, 영구 회비제 실시 등을 결의하였다.
▲1972~1974: 총동창회 기반 구축
총동창회의 체제 정비와 역량 확대는 이듬해에도 계속 이어졌다. ‘회원 상호 간의 친목과 권익을 도모하고 모교 발전과 향상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을 실천하기 위하여 동창회원, 모교 교수, 재단 관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1972년 1월 2일에 처음으로 신년교례회를 개최하였다. 이후 회원 신년교례회 제도를 정착시켜 상호 간의 대화의 장을 넓혔다.
▶1972년 3월 25일에는 71년도 총동창회 업무보고 및 72년도 임원 선출을 위한 제4회 정기총회가 도서관 열람실에서 열렸다. 1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장에는 강재구 동문이 재선임되었다. 또한 4월 14일 이사회를 개최하여 영구회원제를 시행하고, 임원회비도 매년 2,000원씩 징수하기로 하였다.
▶1973년 3월 31일 동원예식장에서 제5회 정기총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총회에서는 전년도 업무보고와 ‘총동창회관 건립 3년(1970. 07~1973. 06) 계획’의 연장안(~1976. 06.30)이 채택되었다.
▶1974년 3월 29일 제6회 정기총회에서는 5대 회장단 전원이 유임되었다. 4월 26일 이사회에서는 대구대와 청구대의 병합 이후 첫 동창회지를 발간하기로 결정하고, 편집위원을 선출하였다. 동창회지의 제목은 『천마동문회보(天馬同門會報)』로 결정되었으며, 연 3회발간하기로 하였다.
▶1974년 8월 23일 이인기 총장이 총동창회를 방문하여 1951년 대구대학 1회 졸업을 영남대학 1회 졸업으로 하고, 청구대학 1회 졸업을 영남대학 3회 졸업으로 할 것과 아울러 개교 연수도 대구대학의 개교연도로 조정할 것을 결의함으로써 완전한 법적 통합 체제를 확립하였다.
▲1975~1976: 장학위원회 발족 및 회원자격 확대
1975년 3월 28일 제7회 정기총회가 동원예식장에서 개최되었다. 총회에서는 임원 선
출, 총동창회관 건립에 따른 제반 사항 인준 및 심의, 75년도 사업계획 심의 등을 논의하였다. 이 시기 총동창회의 기구는 총회와 이사회, 상임이사회 등이 있고, 오일용 동창회장 외 부회장 5명의 회장단이 있었다. 또한 이사는 102명이며, 상임이사는 35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