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 70년사 속으로] 홈커밍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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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5-05-19 13:56 조회 143회 댓글 0건본문
▲좌측부터 69학번, 79학번 모교방문 축제
본 내용은 지난해 발간된 ‘총동창회 70년사’에 수록된 ‘제4부-‘천마인’의 힘을 확인하다. 총동창회의 발전기(296p)’ 편을 정리하였습니다.
제10장 ― 정체성 공유와 새로운 관계 정립, 홈커밍데이
1. 영남대학교 첫 입학생 68학번의 주도로 성사
1968년 3월 11일은 대구대학·청구대학이 통합하여 탄생한 영남대학교의 첫 번째 신입생 1,275명이 입학한 날이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러 어느덧 설렘을 안고 입학했던 68학번 신입생은 우리 사회 각계 각처의 중추적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에 68학번 동문들은 젊은 시절의 추억이 어린 경산 교정을 찾고, 정다웠던 학우들과 다시 만나며, 각자 성취한 역량을 함께 나누고자 ‘입학 30주년 기념 모교방문 축제’를 추진하게 된다.
이 행사가 성사된 계기는 무엇보다 영남대학교 총동창회 강병희(68.법학) 사무총장의 주도적 역할이 컸다. 강 총장은 1996년 서울 소재 K 대학교의 모교방문 30주년 행사를 접하고 크게 자극받았다. 그는 이러한 행사는 68학번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였다. 68학번이전 선배들과 교직원들은 대구대학과 청구대학 입학이라는 이질감이 엄연히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와 무관하면서도 동질감이 남달랐던 68학번에서 이와 같은 행사를 통해 영남대학교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고, 이를 전통으로 세우고자 하는 단초로 기획한 것이다.
입학 30주년 모교방문 축제는 미국에서 고교 졸업자들이 졸업 30년 뒤 모교를 찾는 이른바 ‘홈커밍데이(homecoming day)’ 모티프를 따온 것이다. 이에 앞서 학과 및 고시 동문등이 개별적으로 모교방문의 날을 거행한 적이 있으나, 특정 연도에 입학한 동문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모교방문 축제는 새로운 시도였다.
그런데 IMF 사태로 무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때 돈이 문제라면 500만 원을 협찬하겠다고 나선 박호완(68.전자) 동문의 제안으로 1998년 2월 하순 준비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에 1998년 3월 5일 발간된 동창회보 178호에 ‘68학번 입학 30주년 기념 모교방문 축제’ 준비위원으로 참여할 동기를 찾는 광고가 준비위원회 발기인 명의로 공식 게재되었다.
박호완 동문이 준비위원장을 맡았으며, 부위원장과 총무·진행·홍보·섭외 분과위원장을 선임하였다.
2. 81학번까지 지속되며 동기 간 우정 다져
1998년 5월 9일 일련의 준비 및 홍보 과정을 거쳐 모교 국제관에서 제1회 입학 30주년 기념 모교방문 축제가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모교 통합 첫 입학 기수인 68학번 동기를 주인공으로 한 이날 행사에서는 초청 은사 허근 교수, 박영규 모교 부총장, 김만섭 총동창회 부회장 등 250여 명이 참석하였다. 축제 행사는 교정 순례 및 기념 촬영, 사물놀이 관람, 국제관에서의 공식 행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행사가 끝난 후에는 68학번 동기 명의로 모교 발전기금 및 총동창회 장학기금을 각각 500만 원씩 전달하였다.
68학번 동기생들이 처음으로 개최한 입학 30주년 기념 모교방문 축제는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IMF로 어려운 시기에 여러 동문과 후배들에게 큰 힘을 실어 주었다. 또한 ‘홈커밍데이’가 68학번에 그치지 않고, 전통 있는 축제로 매년 지속되기를 기대하였다. 이에 1998년 11월 20일 임경수(69.토목)·이우경(69.전기) 동문이 회장으로 선임되어 축제를 준비하였다. 그 결과 1999년 4월 3일 모교 캠퍼스 국제관에서 ‘69학번 입학 30주년 기념 모교방문 축제’가 개최되었다.
입학 30주년 기념 모교방문 축제는 100~400명의 동문이 참석하는 가운데 2011년 81학번까지 지속하며, 동기 간 우정과 모교 발전에 앞장서기로 다짐하는 자리를 가졌다.

'영남대학교 총동창회 70년사' 구매와 관련된 문의는 동창회 사무실(053-745-5678)로 연락하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