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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영남학원 정상화에 대한 바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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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동창회 작성일 2009-11-11 조회 14,2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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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嶺南學園 正常化에 대한 바른 이해 >





  우리 영대인들은 지난 20년간 뚜렷한 목표도, 명확한 방향성도 없이

 지속된 임시이사체제하에서 모교의 위상이 한강이남 최고명문대학에서

 대구지역 2위조차 힘든 대학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

 하면서, 재단정상화없이는 모교의 발전과 옛 영광회복이 불가능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있다.


  영남학원 구성원들의 총의를 모아 적법하게 마련한 정상화방안이 일부

 극소수 외부와 연계한 반대세력이 旧財團에 前身(大邱ㆍ靑丘)大學의 지

 분도 포함해야 한다고 억지주장을 하고, 박정희 前대통령의 영남대학교

 출범당시의 역할과 이후 명문대학으로 발전시킨데 대한 평가를 폄훼하며,

 재단정상화를 비리재단 복귀로 罵倒하면서 정상화를 방해하고 있다.


  따라서 영남대학교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이 기


 회에 재단정상화가 반드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를 밝히고자 한


 다.






一. 대구대학 略史




  1945년 10월 20일 대구대학의 전신 경북종합대학기성회가 결성되어 최준씨가 회장에 취임하여 활동을 개시하고, 1946년 9월 8일 경북종합대학재단조성위원회 회장에 정해붕씨가 추대되어 1947년 3월 10일 대구문리과대학으로 개교했으며, 同年 9월 22일 (재)대구대학 설립인가를 받아 9월 27일 정해붕씨가 초대이사장에 취임했다.




  (재)대구대학 설립 당시 고액 기부자를 금액 순으로 보면 정해붕 860만원, 김경곤 100만원, 이정우 100만원, 경북향교재단 100만원, 전세덕 100만원, 경북도청 40만원, 최준 40만원과 장서 5,000권(문파문고), 김봉은 30만원, 배선규 24만원, 의성군수 11만원 순이었다. 이때 정해붕 이사장은 전답 236,721평도 함께 기부하고 1953년 2월 11일까지 이사장으로 재직했으며, 최준씨는 8명의 이사 중 한사람으로 참여했다.




  1957년에 최준 선생은 과수원 9,536평, 대지 11,442평, 전답 12,772평, 야산 8,973평, 건물 351평, 산림 828,000평 등 전 재산을 대구대학재단에 기부하여 대구대학 발전에 기여했다. 최준 선생은 1956년 11월 1일부터 1958년 1월 31일까지 4대 이사장, 1960년 5월 31일부터 1963년 5월 31일까지 3년간 6대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그 후 7대 이사장 안주홍(63. 5. 31~63. 9. 13), 8대 이사장 채현년(63. 9. 13~63. 11. 4), 9대 이사장 안덕기(63. 11. 4~64. 4. 10), 10대 이사장 채현년(64. 4. 10~64. 8. 8), 11대 이사장 이병철(64. 8. 8~68. 12. 16)로 이어지다가 영남학원으로 통합되었다.




  이병철 이사장 취임이전 17년간 대구대학 학장은 11명이었는데 8년 3개월간 재임한 이우창 학장(53. 6. 24~61. 10. 5)을 제외하면 학장의 평균재임기간이 1년 미만이었다. 초창기 대구대학은 재단과 학사운영이 극히 불안정했음을 이사장과 학장의 재임기간에서 알 수 있다.




  1967년 8월 청구대학이 박정희 대통령을 교주로 영입함에 따라 대구대학 교직원과 재학생들은 위기감에서, 재단은 재정적 압박상황하에서, 지역민들의 사립명문종합대학 여망에 부응하기 위해 통합에 동참하여 탄생한 것이 영남대학교이다. 당시 청와대는 청구대학만으로도 부담되는데 대구대학까지 떠맡는 것은 무리라고 난색을 표명했으나, 兩대학을 통합하여 종합대학으로 출발시키면 지역에 명문대학을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따랐다고 한다.






一. 청구대학 略史


 


  청구대학은 1950년 4월 10일 법인설립인가를 받고 4월 25일 초대 재단이사장에 정종수씨, 초대학장에 최해청 선생이 취임했다. 재단 설립 발기인 7명 중 5명이 경북布靴조합 이사일 정도로 경북布靴조합의 재산출연에 의해 재단이 성립되었다. 청구대학의 前身은 최해청 선생이 주도하여 1948년 11월 28일 개원한 대구문리과전문학원이고, 그에 앞서 대구야간대학기성회를 결성하여 회장에 장인환 경북도지사, 부회장에 최해청 선생이 취임하여 청구대학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지역사회에서는 최해청 선생이 청구대학 설립자로 인식되어 있으나 사립대학의 설립자는 재단이라 해석함이 타당할 것이다.




  초대 정종수 이사장(50. 4. 25~54. 3. 31)에 이어 2대 전기수 이사장(54. 3. 31)이 취임했지만 대구대학과는 달리 청구대학에는 경북布靴조합외에는 대규모 기부자가 없었으므로 항상 재정이 궁핍할 수밖에 없었다. 財力家의 영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서 대학의 재정은 私債로 연명하기에 이르렀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청구대학은 재단과 학장 측의 분규로 재단이사장 직무대리로 박수민 이사, 학장에는 최해청 선생의 동생 최해태(67. 1. 9)씨가 취임했으며 2대 학장은 취임하자마자 새 재단영입작업에 착수했다. 청구대학의 私債를 해결할 財力家가 지역에는 없었고 在京出鄕 企業人 영입작업도 지지부진하자, 청와대에 지원요청을 1967년 초부터 시작했고 그 역할은 경북도지사 김인씨와 노산 이은상교수가 담당했다.




  1967년 6월 15일 효목동에 신축 중이던 5층 건물이 붕괴하여 10명이 사망하고 30명이 부상하는 대참사가 발생하여 청구대학은 치명적인 상황에 놓여 독자생존이 불가능하기에 이르렀고 년초부터 접촉하던 새주인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私債 1억원과 이자를 해결하고 1967년 8월 8일 이동녕씨를 이사장으로 하는 재단개편이 이루어졌다.




  1948년 대학민국 건국을 전후하여 주경야독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야간에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하려는 숭고한 뜻으로 출발한 청구대학은 만성적인 자금난을 이기지 못한데다가 신축교사 붕괴라는 대참사를 맞아 독자생존 가능성이 전무했던 것이다. 초대 및 2대 이사장과 최해청 선생 후손들이 서로 자기가 설립자 후손이라 주장하고 영남대학교를 장물이라고 매도하는데 누구를 청구대학 설립자로 특정할 수 있겠으며 1967년 재단개편시점 청구대학 형편을 감안하면 설립자로 지분요구할 자격이 없다 할 것이다. 당시 신문에는 청구대학은 교직원급여도 주지 못할 형편이었다는 기사가 있고 또 심각한 재정난극복이 과제라는 신문사설도 있다. 실제로 청구대학이 안고 있던 거액의 부채를 통합 영남대학이 해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一. 嶺南大學校와 前身(大邱ㆍ靑丘)大學 設立者들의 持分


 


   私債를 구해야 교직원월급을 해결하는 자금난을 겪고 있던 청구대학은 재단과 학장측의 분규로 학장이 바뀐 후 새 재단 물색에 적극 나섰으나 財力家를 구하지 못하던 중 신축교사 붕괴라는 大慘事마져 겪은 끝에 朴正熙 大統領 설득에 성공하여 起死回生하게 되었다.




  1967년 12월 16일 영남대학교가 탄생했다. 학교법인 영남학원 설립당시 이사 13인은 “우리는 박정희씨를 우리의 법인과 학교의 최고지도자 교주로 모시고 그 지도를 받고 그 지도에 따를 것을 굳게 결의하는 바”라고 결의문에서 밝혔다.




  대한민국에서 가용면적이 가장 넓은 경산캠퍼스 매입과 단일 캠퍼스에 가장 많은 재학생을 포용한 대학교로 성장한 점, 의과대학이 설치되고 동양의 의료허브로 키울 포부로 영대병원이 설립되고, 전문인력양성을 위해 영남이공대학이 설치되고, 안정적 수익원 확보를 위해 사립대학에 유일하게 단자회사(영남투자금융)가 인가됨과 함께 70~80년대 행정고시ㆍ사법고시 합격자를 대거 배출하여 한강이남 최고명문대학으로 도약한 영남대학교는 고 박정희대통령과 설립당시의 이사진들의 지원과 공로가 그 밑바탕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부의 인사들은 박대통령 개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아니지 않느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대학에는 특정인이 직접 출연할 수도 있지만 외부에서 재정을 끌어와서 도울 수도 있는 것이다. 바로 고 박대통령의 영향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들이 영남대학의 발전을 위해 추진되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일부 교수들 중에는 영남대학 이사에 대구대학과 청구대학 몫도 배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이 없었으면 영남대학도 없으므로 언뜻 들으면 타당한 듯 하지만 대구대학에는 정해붕, 최준, 이병철씨가 있고, 청구대학에는 정종수, 전기수, 최해청씨의 후손들 중 일부는 서로 설립자 후손으로 자처하고 있다. 지금 누구를 설립자로 인정하여 특정지울 수 있는가?




  日帝로부터 獨立(대구대학)과 大韓民國建國(청구대학)이라는 혼돈과 혼란기에 人材養成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은 공로는 높이 받들어야 하지만, 1967년 統合前後의 사정을 감안하면 兩大學 設立者의 後孫들이 嶺南學園에 持分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一. 旧財團을 排除한 正常化가 가능한가?




  財團正常化에 반대하는 측은 旧財團을 배제하고 國公立化하든지 財力家를 영입해야지 돈을 낼 형편이 안 되는 旧財團에게 갖다 바치려 하느냐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영남학원은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는 형편임에도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첫째, 國公立化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있는 국립대학도 부담을 덜기위해 줄이려는 판에 私立대학을 國公立化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둘째, 학교법인 영남학원 정관 제1조에 “학교법인 영남학원은 ....... 교주 박정희선생의 창학이념에 입각하여 운영한다.”라고 되어있다. 교주 박정희선생이 정관에 못 박혀 있는데 어느 재력가를 영입할 수 있겠는가? 정관을 바꾸면 될 것 아닌가 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임시이사는 정관 변경을 할 수 없고, 교육부공무원이 앞뒤 分別없이 변경승인 해주겠는가?




  셋째,  구재단은 영남학원의 이해당사자다. 구성원들이 배제하고 합의하더라도 이해당사자가 반대하여 소송을 제기하면 또다시 분규대학이 되어 임시이사파견대학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상지대학에 대한 대법원판례가 그 본보기다. 구재단을 배제하고 다른 대안을 찾자는 주장은 재단정상화하지 말자는 것과 마찬가지 주장일 뿐이다. 이러한 주장은 결국 재단이 정상화 안 됨으로서 재단측으로부터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진정으로 영남대학교를 사랑하고 한강이남 최고명문대학의 옛 영광을 회복하는 길이 재단정상화와 자기희생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여론수렴과정에서 어떤 입장을 취했든 구성원 대다수 찬성으로 성립된 구재단과 함께 가는 재단정상화방안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사실을 수긍하고 협력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음도 인정해야 한다.




 


 


一. 財團正常化案이 非理財團復歸라는 주장의 眞情性




  박근혜씨는 이사장(80. 4. 24 ~ 80. 11. 18), 이사(80. 11. 18 ~ 88. 11. 2)로 재임했다. 87년 6. 29선언이후 봇물이 터진 民主化바람과 與小野大정국을 이용하여 私立大學 최초로 국정감사를 불러들여 朴正熙 지우기에 혈안이 된 거대 야당의원들이 동원되어 미주알고주알 다 밝혔지만, 朴 前理事 본인이 책임져야 할 비리는 없었음에도 소수의 교수와 이에 동조한 순진한 학생들의 등쌀에 떠밀려 자진 사퇴했다.




  영남학원에 비리가 있었다고해서 특정한 재단이사에게 몽땅 뒤집어씌울 수는 없는 일 일터이며 만일 박 前이사가 책임져야할 비리가 있었다면 소위 민주화정권하에서 가만히 내버려 두었겠는가? 현재 나도는 비리문건은 임시이사체제를 불러들인 측이 자기정당화를 위해 내놓은 근거없는 일방적인 자료에 불과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것은 2007년에 있었던 한나라당의 대선후보검증위원회에서 이미 밝혀진 바가 있다. 당시 검증위원회에서 영남대학교와 관련하여 박근혜 후보에 대하여 철저하게 조사하였으나 검증위원회는 물론 전국의 주요 방송사와 신문사의 기자들도 그 어떠한 비리 사항을 찾지 못하였음은 이미 보도되었고 증명된 것이다. 그 당시에 전국에서 많은 의혹과 폭로가 제보되었으나 조사 결과 모두 사실무근으로 밝혀진 것이다.






一. 외부세력을 등에 업은 財團正常化 반대논리의 不當性




  영남학원 정상화 방안은 재단이사회가 영남학원 구성원 대표로 구성한 정상화추진위원회가 2008년 2월 19일 활동을 개시하여 구성원의 여론을 두 차례(1차(5월 7일~16일), 2차(10월 20일~24일))에 걸쳐 수렴한 결과, 영남대학교 교수의 67.2%, 영남대학교 직원의 96.6%, 영남대학교총동창회 임원의 97.6%, 영남이공대학 교수ㆍ직원의 95.2%, 영남이공대학동창회 임원의 96.7%라는 압도적 찬성을 얻어 영남학원 이사 7명 중 4명을 박근혜 前 理事가 추천하는 인사로 正式財團을 구성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財團理事會의 결의를 거쳐 교육과학기술부와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 정상화 방안을 접수시켰다.




  두 차례에 걸쳐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반대를 일삼던 소수의 교수들은 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구성원들의 절대다수 찬성으로 재단정상화방안이 마련된 이후에는 외부세력을 끌어들여 끈질기게 방해하고 있다. 구성원의 절대다수가 찬성한 정상화방안을 무산시키려는 반민주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음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정당하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진행 중인 財團正常化가 무산된다면 역사는 다시 20년 전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임시이사체제하에서 한강이남 최고명문대학에서 대구지역에서조차 2위로 전락한데 대해 분개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게 될 것임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一. 영남학원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남대는 3류로 간다.




  2005년까지 영남대학 출신 副理事官이상 공무원은 지방대학 중 가장 많았다. 현재 부이사관 이상 공직자가 퇴직하고 나면 씨가 마를 수밖에 없어 장래를 걱정하는 동문들의 피가 마른다. IMF를 거치면서 5대 시중은행들이 모두 간판을 내렸다. 주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인의식을 가진 主體가 없는 조직이나 기관은 망하게 되어있다. 뜻있는 嶺大人의 95~98%가 새로 구성될 正理事陣이 주인의식을 갖고 영남학원을 이끌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절대다수가 찬성해도 일부가 반대하면 정상화될 수 없다면 해를 거듭할수록 위상이 急轉直下하는 영남학원은 문 닫기 전에는 재단정상화가 불가능하다.




  대학이 위기에 처했을 때 고 박정희대통령의 지원으로 발전적으로 회생한 과거의 역사로 보거나, 구성원 절대다수의 지지 하에 이사회결의까지 해서 旧재단의 참여를 정중히 그리고 간절히 요청하여 승낙받은 현 시점에서 외부세력까지 개입시켜 재단정상화를 반대하는 것은 17만 영남대 동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무책임한 소수 때문에 영남대와 영남대 동문들이 희생될 수는 없다. 17만 영남대 동문들은 私學紛爭調整委員會에 대하여 지난 일년 동안 합법적이고 정당하게 모아진 영남학원 구성원의 간절한 재단정상화를 통한 대학발전의 뜻을 받아들여 이미 제출된 영남학원 正理事를 조속히 결정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




  만약 구성원들이 총의를 모아 적법하게 마련한 정상화방안이 우리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6월 18일 개최되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조차 결실을 맺지 못한다면 영남대학교 재단정상화추진특별위원회는 영남대학교를 사랑하는 국민과 6백만 대구ㆍ경북지역민, 17만 동문과 재학생을 대상으로 재단정상화를 방해하는 세력에 대하여 그 책임을 엄중히 추궁하는 다양한 활동(언론廣告, 기자회견, 동문 및 지역민 서명작업 등)을 전개할 것이다.







영  남  대  학  교   총  동  창  회


재 단 정 상 화 추 진 특 별 위 원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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