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박희광선생 기념사업회 사무처장 박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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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3-05 00:41 조회 1,055회 댓글 0건본문

애국지사 박희광선생 서거 50주년 추모식
박희광 선생 기념관 건립 등 추모사업 매진
선친의 독립운동 활약상 연구로 학사학위 받아
3.1운동 101주년을 맞았다.
박정용 애국지사 박희광선생기념사업회 사무처장(07.정외)은 매년 3.1절이 돌아오면 남다른 감회로 이 날을 맞이한다.
특히 올해는 애국지사 박희광선생 서거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박희광 선생은 구미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이며, 박 사무처장은 박희광선생의 차남으로 표류하고 있는 박희광선생의 생가 복원과 기념관 건립 등 추모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박정용 사무처장은"박희광 선생 서거 50주년을 맞아 박희광선생기념사업회는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와 1월 22일 구미 금오산 백운교 앞 박희광 선생 동상 앞에서 추모식을 열었다"며,"가족과 광복회 대구․경북지부장을 비롯한 독립유공자 후손, 시민들이 참석해 박희광 선생을 추모했다"고 한다.
"3.1절, 현충일, 광복절에 박희광 의사 추념식이 열렸지만, 박 의사의 서거일에 고향 구미에서 추모식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박 사무처장은"동상 제막식 이후 30여년 만에 아버지 고향인 구미에서 추모식이 열리게 되어 뜻 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행적과 공로가 세상에 많이 알려져야 한다"는 박 사무처장은"정부와 각 지자체도 민족을 위해 희생한 지사들의 선양사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낸다.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은 1901년 경북 선산군 봉곡동(현 구미시 봉곡동)에서 태어났다. 8살의 나이에 의병 활동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건너가 16세에 항일독립군 연합단체 대한통의부 대원으로 활동했다.
상하이 임시정부'3인조 암살단'대원으로 활동을 하다가 1924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심에서 사형선고를, 2심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여순감옥에서 20년간 옥고를 치르다 1943년 출소했다.
광복 후 국내로 돌아와 백범 김구 선생을 경호하는 일을 맡으면서 김구 선생과 각별한 인연을 가졌다.
1968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국민장(현 독립장)을 추서 받았으며, 1970년 71세로 타계,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1984년 구미 금오지에 박희광 선생 동상이 건립됐다. 1997년에는 박희광 선생의 유족 등이 사재 7천만원을 털어 정부 보조금과 함께 대구 두류공원 내에 동상 조각상을 건립했다.
박희광 선생의 생가터 복원과 기념관 건립사업이 추진된 적도 있었다.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 가난하고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경우는 많다. 박정용 사무처장 역시 다를 바 없었다. 극심한 생활고로 중학교 2학년 중퇴를 끝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 들었다.
박 사무처장은 학업에 대한 미련으로 뒤늦게 검정고시를 거쳐 2007년 만 56세의 나이에 영남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여 2011년 2월 졸업했다. 젊음을 조국 독립에 바친 선친의 삶을 정리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졸업논문은'박희광 의사, 조선독립 대한통의부의 특공대원으로서의 투쟁활동'이란 선친의 항일투쟁 활약상을 연구했다.
박 사무처장은 선친의 독립운동에 대한 연구를 할 만큼 독립후손의 후예이자 선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선친의 일이지만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상을 제대로 알리고 숭고한 그 정신을 계승하는데 앞장서기 위해서다.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안으로 자랑스럽다"는 박 사무처장은"선열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선현 분들의 조국애와 고귀한 나라사랑 정신을 이어 받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