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훈 뉴욕타임스 서울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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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1-05 00:55 조회 1,557회 댓글 0건본문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과 알아야 될 중요한 기사 찾아 쓰는 일이 임무"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수상,'영남대학교를 빛낸 천마인'선정
외국생활은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원 1년 연수가 전부
코리아헤럴드 · AP통신 ․ 뉴욕타임스 등 30여년 베테랑 기자
"기자의 일이 갖는 직업에 충실할 뿐입니다"
최상훈 뉴욕타임스 서울지국장(81.경제).
최 지국장은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코리아헤럴드 3년, AP통신사 11년, 뉴욕타임스 15년 등 외신기자 경력 30여년의 베테랑 기자이다.
대단한 경력의 언론인이지만 최 지국장은'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기사를 쓸 뿐, 국내 언론 기자와 다른 점은 없다"며, 겸손해 한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같은 주력 언론을 정점에 놓고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이직하는 방식이 미국 언론계의 보편적인 풍토라고 한다. 특히 외신기자인 특파원의 경우, 대부분이 경력기자인 점을 감안하면 그 역할과 위상을 알 수 있다.
뉴욕타임스 서울지국 한국특파원은 단 한명이다. 최 지국장 혼자다. 혼자서 모든 걸 다 처리해야 하며, 혼자 파악해서 좋은 아이디어를 골라야 한다.
한국에 주재하는 외신기자는 약 200여명에 달한다. 1/10이 외국인이고 대부분 한국인이며, 지국장은 대부분 외국인이라고 한다.
최 지국장은 SKY대 출신도 아닌 지방대 출신이다. 더 더욱 외신기자로 외국 명문대 출신도 아니다.
최상훈 동문이 왜 뉴욕타임스 한국 특파원으로 채용 되었을까?"한국 외신기자는 외국 언론에 글을 쓰는 사람이다. 언어가 영어일 뿐 한글 기사와 똑 같다"는 최 지국장은 그저 열심히 해서 인정을 받았을 뿐이라지만, 분명 필요했기 때문에 최 지국장을 선택 했을 것이다.
30여년 외신기자 경력이지만 최 지국장의 외국생활은 뉴욕타임스 한국특파원 시절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연구원으로 1년간 연수한 것이 전부이다.
"뉴욕타임스는 전 세계에서 영어로 읽는 시민이 잠재적인 독자"라는 최 지국장은"한국 특파원의 임무는 이들에게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과 알아야 될 중요한 한국의 기사를 찾아 쓰는 일"이라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시간대에 따라 아시아본부(홍콩), 유럽본부(런던), 뉴욕본부에 기사를 송고하면 편집해 기사를 올리고 내용을 업데이트하는 웹사이트 중심의 24시간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페이지 뷰 등을 통해 구독률을 편집인과 경영인들이 알 수 있기에 중요하지만 재미없는 기사도 사진과 그래프를 넣어 재미있게 기사를 쓰고, 서술형이 아닌 질의응답형으로 기사를 쓴다고 한다.
"외신기자이기에 국내 언론과는 달리 출입처가 없다. 정부 부처, 정치인, 기업인을 취재하는 기사는 별로 없으며, 설명 가능한 기획기사를 주로 다룬다"는 최 지국장은"한국사회를 설명하는 일이 기사의 시작이기에 아이디어가 중요하다"고 한다.
"좋은 주제를 잡아 글의 포커스를 명확하며 가독성 있도록 기사를 써오고 있다"는 최 지국장은"한국어든 영어든 글쓰기는 어렵다. 어떻게 하면 영어로 글을 잘 쓸 수 있을까하는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한다.
어디서든 기사 작성이 가능하며 근무시간이 자유롭지만 미국과의 시차가 반대이기에 미국 현지에서 원하는 기사를 요구할 시에는 밤늦게 때론 새벽까지 일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을 이해하는 기사에 초점을 맞추고, 이런 기사를 찾아내는 것이 한국 특파원의 능력"이라는 최 지국장은 좋은 주제와 읽을거리 소재를 찾는 기술은 세월이 지나고 노력을 더하면 노하우가 생긴다고 한다.
최 지국장은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 복학 후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다. 당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으로 영어붐이 일어나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재욱토플 등을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최 지국장은 2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면서 아침 일찍 도서관 신문진열대에 신문을 진열하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영어가 재미있었고, 정작 전공인 경제학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대학 시절에는 산악부에 가입한 친구와 전국 명산을 다니기도 했다.
졸업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 입학하여 영어 실력을 쌓았다.
"딱히 기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는 최 지국장은 우연한 기회에 기자가 됐다.
통번역대학원에 같이 다니던 친구 따라 시험을 봤고, 합격해 1991년 영자신문 코리아헤럴드에 입사였다.
코리아헤럴드에 입사한 이후 기자 일에 흥미가 붙었다. 3년 뒤 AP통신사 서울지국으로 이직했고, AP통신사에서 11년 경력을 쌓아 2005년 뉴욕타임스로 옮겨 유일한 한국 특파원이 됐다.
AP 통신사 시절 역사 속에 묻힐 뻔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세상 밖으로 끌어냈다.
‘노근리 사건’이란 1950년 한국 전쟁 중 미군이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철교 밑에서 한국인 피난민 300여 명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사실을 1년이 넘는 취재를 통해 반세기 만에 밝힌 대표적인 탐사보도다. 보도 후 양국 정부가 같은 시기 이 사안에 대한 공동조사를 벌이는 등 사회적인 반향도 컸다.
이 보도를 통해 최 지국장은 2000년 퓰리처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또한 미국 조지 포크상,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국제탐사보도상, 한국기자협회 한국기자상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8년 미얀마 민주화운동 보도, 2009년 미얀마 사이클론 피해 보도 등을 통해 아시아 출판인협회상, 아시아 인권언론인상 수상한 경력이 있다.
최 지국장은'영남대학교를 빛낸 천마인'에 선정돼 수상했으며, 모교를 방문해 후배들을 대상으로 특강도 했다.
"내가 하는 일을 잘했으면 좋겠다. 평생 기자생활로 기사만 쓰다가 인생을 마쳐야 하느냐는 생각에 은퇴 후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다"는 최 지국장은"무슨 일이 어떤 일이 될지는 몰라도 은퇴 후 기자와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신재칠 편집국장, jclucky@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