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門탐방] 이종우 한국호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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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3-01-05 00:02 조회 1,320회 댓글 0건본문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영남대, 졸업 자랑스럽죠"
영남대 장학기금 10억 기탁, 松巖장학회 운영
중앙도서관 옆에 흉상 제막해 고귀한 뜻 기려
"영남대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곳입니다. 영남대를 졸업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松巖 이종우동문(64.기계.㈜한국호머 회장). 李회장은 영남대에 대한 애정과 후배사랑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각별하다.
李회장은 지난 2000년 영남대에 발전기금 1억 원을 기탁했다. 2002년 松巖장학회를 설립하여 5억 원을 기탁하는 등 후배들과 모교발전을 위하여 지금까지 영남대에 10억 원의 거액을 기탁하면서 지속적으로 후원을 해오고 있다.
영남대는 李회장의 뜻에 따라 2003년 1학기부터 매년 기계공학부 2학년에 진학하는 학생 1~2명을 선발해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 전액을 지급해오고 있는데, 그 수가 벌써 11명이다.
李회장은 2003년 5월에 영남대에서 명예공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기계공학부 기계관 4층에 자신의 호를 딴 '송암홀' 도 건립했다.
2010년에는 영남대총동창회 '자랑스러운 영대인 상' 도 받았으며, 한국인사관리학회 경영자 대상과 영상아카데미학회 경영인상도 수상했다.
지난 11월 8일 영남대는 중앙도서관 옆 잔디광장에 李회장의 흉상을 제막했다. 흉상 아래에는 '명심보감' 입교 편에 실린 '春若不耕이면 秋無所望이라' (만약 봄에 밭을 갈지 않으면 가을에 바랄 것이 없다). '~ 모교는 이종우 회장의 거룩한 뜻을 기리고자 마음을 모아 학문 수련과 진리 탐구의 도량인 여기에 이 흉상을 세운다' 는 글귀를 새겨 아낌없이 거액을 모교와 후배들을 위해 기탁한 이종우 회장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있다
"무엇을 바라고 장학기금을 기탁한 것은 아닙니다. 모교로부터 너무 과분한 대우를 받는 것 같아 죄송스럽다" 는 李회장은 "모교의 과분한 대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기금을 더 늘려 기계공학부 학생뿐만 아니라 타 단과대학 학생들에게도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松巖장학회를 확대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고 한다.
李회장은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에게 메일이나 전화로 안부를 묻고, 최선을 다해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달라고 후배들을 격려한단다.
李회장 "7여 년 전, 송암장학금을 받은 윤정기학생이 근무하고 있는 예천비행장으로 면회를 갔다. 장학금을 받은 감사함에 '뭐라도 선물하고 싶다' 며, 군에서 모은 50여만 원의 월급 통장을 내놓아 그 후배의 마음이 기특해 가슴이 뭉클하고 감격스러워 눈시울을 적신 적이 있다" 는 일화를 소개한다. 윤정기학생은 2010년 기계공학부를 수석졸업하고 LG디스플레이에 근무하고 있다.
李회장은 1938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선친의 고향인 경북 김천으로 귀국, 뒤이은 한국전쟁으로 힘들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세 때 공군에 입대하여 제대 후 문관으로 특채되어 7년 간 K2 비행장 수리창에서 근무했다. 이때의 경험이 훗날 직장생활과 기업경영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대구 K2비행장에 근무하면서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27세의 늦은 나이로 영남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하여 주경야독으로 학업을 마쳤다.
"당시 등록금 마련이 어려워 내 주위에는 등록금을 보태 줄 사람이 없나. 나도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나하는 생각을 했다" 는 李회장. 자신처럼 학구열은 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후배들을 돕겠다는 생각이 李회장을 장학회를 설립하게 한 계기다.
68년 대학 졸업 후 한일건재공업(주) 공장장과 영화철재공업(주) 전무이사를 거쳐 李회장은 77년 서울 온수공단에서 ㈜한국호머를 설립했다. 문관시절의 경험과 전공한 기계공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그때까지 국내에 보급되지 않았던 경량철골 천장 및 칸막이 자재를 사용한 새로운 시공법으로 국회의사당, 63빌딩, LG트윈빌딩 등 대규모 빌딩 건축에 참여하여 국내 대형 건축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한국호머는 서울 온수공단과 인천 남동공단에 자리 잡고 있다.
李회장은 한국호머 창립의 터전인 서울 온수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을 2007년부터 2대째 맡아오고 있다.
李회장은 후배들을 위한 장학사업 뿐만 아니나 한국복지재단과 불우이웃돕기 자매결연을 맺고 독거노인과 소년소녀 가장, 불우이웃을 돕는 나눔을 실천하며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李회장은 해방 전 일본 오사카 인근에서 6개월간 초등학교를 다녔다. 어릴 적 배우던 곳이 그리워서 3년 전에 그 초등학교를 찾아갔다. 그 학교 출신인 교장선생은 학생들에게 자신을 '60년 만에 찾아 온 대선배' 라고 소개했다며, 60년 만에 모교를 방문하여 무척 감격스러웠단다.
李회장은 재경 기계공학부동창회 창립을 주도했으며, 영지회(재경 골프모임) 회장과 재경총동창회 부회장과 공대동창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학교법인 영남학원 이사, KAIST 발전재단 이사, 스포츠서울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李회장은 부인 신광순여사와 사이에 1남4녀를 두고 있다.
〈申在七 편집부장, jclucky@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