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門탐방] 배경숙 영남민요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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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3-11-05 00:03 조회 1,507회 댓글 0건본문

"영남민요와 아리랑 계승․발전, 자리매김에 일조"
민요발표회․구미아리랑제 통해 대중화 앞장
박사학위서 국악인 이재욱 최초로 조명
"영남민요와 아리랑의 소중한 가치를 계승․발전하고 자리매김하는데 일조 하도록 하겠습니다"
영남민요연구회를 이끌어 오고 있는 국악인 배경숙회장(74.식영). 裵회장은 영남지역에 전승되어 오는 아리랑과 민요의 발굴과 이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2003년 영남민요연구회를 결성했다.
영남민요연구회는 오늘날에 맞게 곡조를 창작하여 대중화시키고 노래의 상황을 연행하며 무대화하여 영남지역의 아리랑과 민요의 위상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2007년 대구시 전문예술단체로 지정된 영남민요연구회는 매년 연구발표회, 대구와 구미에서 정기공연, 각종 축제 공연, 민요 채록, 양로원 봉사 등을 해오고 있으며, 내년에는 '영남의 소리'로 서울지역 관공서 투어도 계획하고 있다.
"아리랑이 지난해 12월 세계유네스코에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등재 과정에서 영남민요연구회도 문화재청 신청서에 아리랑을 향유하고 전수할 중요 커뮤니티로 함께하여 기쁨이 배가된다"는 裵회장은 민요를 공부해온 자부심과 함께 막중한 사명감을 느낀단다.
"우리민요를 전승․계승하기 위해 지금까지 외롭고 힘들게 영남민요연구회를 이끌어왔다"는 裵회장은 영남민요연구회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영남민요와 아리랑이 더욱 널리 울러 퍼지게 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꾸준한 관심이 있어야한다고 강조한다.
裵회장은 2005년부터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 민요발표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올해가 벌써 8회째다. 또한 2009년부터는 구미에서 '구미아리랑제'를 열고 있다.
매년 발표회 때마다 15곡 정도 무대에 올린다. 곡마다 스토리텔링은 물론 작창, 소품비 등 소요되는 경비도 만만치 않지만 사비로 충당해 오고 있다. 최근에는 대구시 등의 지원금을 받아 일부 충당하고 있다.
裵회장은 토속민요를 현대식으로 작창하여 대중화를 통한 민요 계승 작업에도 앞장서 오고 있다. 물레소리, 화전놀이, 나무하러 가는소리 등을 현대적으로 재구성, 작창한 민요도 15곡이 넘는다.
裵회장은 '대구․경북 1호 민요박사'로, 영남대에서 학사학위 2개, 석사, 박사학위 등 4개의 졸업장을 받았다.
식품영양학과 74학번인 裵회장은 졸업 후 경상북도농업기술원에서 영양사로 4년간 근무타가 71학번인 김종순동문(법학. ㈜바주인다 대표이사)과 결혼하면서 퇴직했다.
"인생 계획에 대한 고민, 50대에 무엇으로 봉사를 할까하는 고민을 하다가 이왕이면 취미삼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되었다"는 裵회장은 남편과 취미가 같으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남편의 취미를 찾던 중, 남편이 TV를 보면서 전주대사습놀이를 좋아하는 모습에 국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국악에 국자도 모르고 국악이란 개념도 별로 없었던 때였다. 장구나 배워 50대에 양로원을 다니면서 노인들을 즐겁게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장구를 배우게 되었다. 장구를 배우는 것이 친구들에게 창피해서 비밀로 했다. 1~2년 장구를 배우다가 소리공부를 하기 위해 학원을 찾았다가 제대로 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1999년 영남대 음악대학 국악과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민요를 배우게 되었다.
국악을 더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 2004년에 석사와 2008년 한국학전공으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裵회장은 박사학위 논문 '이재욱의 영남전래민요집 연구'를 통해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국악인 이재욱을 최초로 조명했다. 이재욱은 서울대 출신으로 초대 국립도서관장을 역임한 대구의 인물로 6.25동란 직후 납북된 이후 잊혀진 인물로 최초의 민요 전공자이자 영남민요를 특화 시켰다. 裵회장의 박사학위 논문은 아리랑사의 중요한 획을 그은 논문으로, 특히 문경아리랑의 가치와 위상을 학문적으로 밝힌 논문이다. 裵회장은 이런 노력으로 문경시장으로부터 감사패도 받았다.
裵회장은 이춘희 ․ 정은하 선생에게 사사받았으며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전수자로 2008년 진해전국국악대전 명인부 민요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영남대 음악대학 강사, 택민국학연구원 연구교수, 문경아리랑제 추진위원, 한국국악협회 대구시지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재욱전집 3권' 발간을 비롯해 '이재욱과 영남전래민요집 연구' '아리랑 그리고 영남의 소리' '문경아리랑 연구'등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다. 금년에 발간한 '이재욱전집 3권'에는 裵회장이 수소문 끝에 찾아낸 이재욱선생의 육필원고를 싣고 있어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장구를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 모습을 떠올리기 힘들 것"이라는 裵회장은 "국악을 좋아하던 남편을 따라 국악을 한 것이 평생 가장 잘 한 일"이라고 한다.
1955년 대구 출신인 裵회장은 부군 김종순동문과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장남 왕수씨는 고대 컴퓨터공학과를, 차남 억수씨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申在七 편집부장, jclucky@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