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봅시다] 이상정 무림교역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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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01-05 00:03 조회 1,348회 댓글 0건본문

"도산인상 일생의 영광, 애국애족 정신 받들어 봉사할 터"
한국 화장실 문화 선도한 개척자이자 선구자
아파트 생활문화 정착 위한 밀알 역할에 최선
"애국애족의 민족정기를 고취하며 구국의 영도자로 헌신하신 민족의 스승이신 도산 안창호선생님의 이름으로 상을 받게 된 것을 일생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안창호 선생님의 애국애족의 정신을 받들어 봉사하겠습니다"
이상정 무림교역 회장(56.법학)이 11월 7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島山 안창호선생 탄신 135주년 기념 '제24회 島山의 밤'에서 도산인상(도산 벤처상)을 수상했다.
도산인상은 사회 각계에서 島山 안창호 선생의 務實力行과 愛己愛他 정신을 실천하여 우리 민족을 위해 헌신봉사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李회장은 남다른 도전과 봉사정신으로 아파트 전문 관리 모델 제시와 이동식 화장실 개발․공급으로 공동생활 문화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 공로로 수상했다.
李회장은 화장실에 인생을 바친 사람으로 이동식 화장실을 보급하면서 국내 화장실 문화의 새 지평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화장실 환경을 문화 차원으로 높인 주인공이자 화장실 문화전도사 역할을 해온 李회장은 30여년 화장실 문화 개척과 아파트문화 정착을 위한 선구자․개척자로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李회장이 '이동식 화장실'사업을 떠올리게 한 계기는 "1984년 5월 여의도광장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주재하던 한국가톨릭 200주년 기념미사에 모인 백만 인파를 보면서 저 많은 사람들이 생리적인 배설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생각"이 화장실 선진국으로 새 시대를 개막하게 된 배경이라고 한다.
"당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앞둔 시점으로 화장실 문화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불모지에서 시작한 것은 화장실 문화에 대한 신념과 애국심이었어요. 화장실 문화에 아무런 관심이 없을 때, 1985년 ㈜무림교역을 설립해 이 일을 소명으로 알고 힘들고 고독한 길을 걸어왔다"고 회고한다.
무림교역은 우리나라 최초로 이동식 화장실을 보급한 회사로, 이동식 화장실 임대․공급․관리하고 있다.
1985년 육사 교정에서 열린 세계양궁대회에 처음으로 이동 화장실 20대를 설치했다. 이후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그리고 1만 명 이상 참가하는 세계 잼버리대회, 대전엑스포, 대통령 취임식장까지 이동식 화장실을 공급하면서 공중화장실을 비롯한 행사장, 공원, 인파가 모이는 곳에는 이동식 화장실이 공급되는 새 시대가 개막되었다.
李회장은 화장실 시설 개선은 물론, 시민의식 개혁, 정책 건의, 심포지엄 개최, 언론 및 대국민 홍보 활동으로 화장실 문화의 르네상스를 선도해 오늘의 선진 화장실 문화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1987년 미국 국제간이화장실협회(PSAI)와 1990년 일본 Toilet협회의 유일한 회원으로 국제적인 창구역할도 했다.
李회장은 1970년대 우리나라 아파트와 공동 주택 정책의 산실이었던 서울시 주택국에서 정책 입안과 실무 행정의 경험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후 1982년 ㈜무림개발을 설립하여 1980년 초반 전국 최초의 아파트 시범 관리 사업을 개척하여 아파트 및 공동 주택의 전문적․종합적 관리 모델을 제시하여 오늘의 아파트 관리 정책으로 발전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1989년에는 (사)국공동주택 전문관리협회를 창립하여 초대회장을 지내면서 아파트 관리 정책을 세우고 오늘의 공동 주택 생활 문화를 정착하는데도 기여했다.
1996년 세계화장실 문화를 다룬 '호모 토일렛'발간에 이어 2012년에는 한국의 화장실 발전상을 다루면서 화장실과 함께 한 자신의 인생을 회고한 '나의 인생詩 화장실문화'를 펴냈다.
"화장실 문화 개척을 위한 일은 그 누구도 알아주지는 않았지만 선구자․개척자의 무거운 짐을 진 마음으로 끊임없이 노력해왔다"는 李회장은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의 변화를 위한 사명감으로 지금까지 보내온 세월이며,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과는 바탕과 환경이 다른 애국적인 개척자의 고행이었다"고 한다.
李회장은 1935년 경북 포항(기계)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해방과 함께 실시된 토지개혁과 6.25전쟁으로 가세가 기울었고,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난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아픈 상처의 恨과 분노, 힘들고 어려웠던 대학시절의 야심이 시대 개척의 정신적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소망교회 원로장로인 李회장은 내무장관실을 비롯한 부산시․경상북도․서울시 등에서 비서관․공보관․감사관 등 20여 년의 공직생활을 했다. (사)서울특별시 지하철문화진흥원 이사장과 나라사랑 기도포럼의 구심역 대표회장으로도 활동했다.
"전 주거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갈등과 분규, 불신이 팽배한 현실의 공동주택 문화 개선이 시급하다"는 李회장은 아파트 생활문화 정착을 위한 밀알 역할을 하겠단다.〈申在七 편집부장, jclucky@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