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성기중 경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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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06-05 00:00 조회 1,527회 댓글 0건본문

'일본에 조선인 머리무덤 확인'학계 첫 보고
"한․일 공동조사 요구, 추모비 건립 등 대책 강구해야"
일본에 조성된 조선인 코무덤' 알리고 대책 앞장
성기중 경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73.정외.(사)나라사랑연구회 이사장)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일본 병사들이 조선인의 머리를 베어 보내 만든 ' 머리무덤'이 일본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국내 학계에 처음으로 보고했다.
成교수는 5월 17일 인천대 송도캠퍼스에서 동아시아일본학회, 계명대 국경연구소, 계명대 국제학연구소, (사)나라사랑연구회가 공동 개최한 '2014년 국제학술세미나' 기조발표에서 '한․일 수교 50주년을 바라보며-재일한국인 머리무덤에 대한 대책'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조선인의 머리무덤에 대해서는 한국 학계에서 다뤄진 적이 없는 최초의 보고로 일본의 잔인함을 지적했다.
成교수는 발표에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일본병사들이 조선인의 머리를 베어 일본에 보낸 사료를 접하고, 사가현 히가시마쓰우라 진자이 근처 산 구릉지에 400여년 전 임진왜란 당시부터 방치해온 한국인의 '머리무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곳은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한국침략 거점 성이었던 나고야성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成교수는 지난 2월 말 '머리무덤'을 확인하기 위해 일본 현지를 방문해 사가현 지역에서 구전으로 전해오는 한국인 머리무덤에 대해 그 지역 향토사 연구자에게 자문을 구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해왔다.
또한 당시기록인 '호천기(戶川記)', '청청조선기(凊正朝鮮記)', '조선기(朝鮮記)', '정한록(征韓錄)', '사가현 박물관 史料' 등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일본군의 머리 베기가 행해졌고, 戰功 확인을 위해 베어낸 머리를 일본으로 보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머리무덤에 관해서는 일본 교도통신이 지난 1979년 8월 6일 '임진왜란 당시 조성된 추정 머리무덤을 일본에서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보도가 됐다.
당시 보도에 의하면 사가현 향토사연구회가 그 지역에 구전으로 전해오던 머리무덤에 대해 사가현청 등에 머리무덤을 조사․발굴하고 위령제를 지내도록 요청했으나 관계 기관에서는 일본 역사의 치부가 드러난다며 동의하지 않았다.
또한 이 같은 내용은 당시 국내 언론에도 소개된 바 있으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묻혀 버렸다.
이 보도 이후 成교수는 이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가져왔으며, 지난 2월 현지 방문조사 결과를 이번에 학계에 보고하게 된 것이다.
成교수는 지난 2012년 8월 (사)나라사랑연구회와 대한정치학회가 공동으로 영남대 천마아트홀에서 개최된 학술세미나에서일본에 조성된 조선인 코무덤에 대한 대책에 관한 주제발표를 통해 임진왜란 후 일본에 조성된 조선인코무덤(鼻塚)의 존재를 알리는 등 대책과 공론화에 앞장서 왔다.
당시 발표에서 成교수는 "조선인 코무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조선인들의 코를 베어 戰功의 기준으로 삼은 데서 비롯됐으며 지금까지 교토시, 쓰야마시, 비젠시 등 일본 내 3곳에서 발견됐다. 일본은 코무덤을 원혼들의 공양을 위해 조성됐다고 주장하면서 지방문화재로 등록했으며, 심지어 관광지로도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일본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베어간 수많은 조선인의 '코'는 쿄토 등에 '코무덤'을 조성했지만, '머리무덤'은 그 동안 발굴이나 위령제가 이뤄지지 않는 등 은폐 의혹에 대한 의문이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成교수는 "일본은 임진왜란 때 조선인 귀나 코를 베어 무덤을 조성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머리무덤은 은폐하고 있다"며 "일본 내 조선인의 '머리무덤'의 존재가 밝혀진 이상 한일공동조사위원회 등을 만들어 조사한 후 환국 이장과 추모비 건립 등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2008년 (사)나라사랑연구회를 설립해 이사장을 맡아 오고 있는 成교수는 지난해 7월 대한정치학회와 공동으로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한국전에 장교로 참전한 필리핀 라모스 前대통령을 초청해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