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서 명예박사학위 받은 김수한 前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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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05-05 00:02 조회 1,415회 댓글 0건본문

제15대 전반기 국회의장 역임, 지방대 출신 최초 의장
신한당 ․ 신민당 대변인 등 4회 역임한 6선 국회의원
김수한 前국회의장(49.법학.새누리당 상임고문단 의장, 86세)이 우리나라 정치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4월 15일 모교인 영남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3년 모교 법학과 졸업 후 1957년 정치에 첫 발을 디딘 김 前의장은 1967년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래 제8․9․10․12․15대 국회의원 등 6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원로 정치인이다.
특히 1966년 신한당 대변인, 1970년 신민당 대변인으로 야당 대변인 연 4회 역임했으며, 제15대 국회 전반기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이는 지방대학 출신으로는 우리나라 최초로서 개인에게도 영광이었지만, 동문들과 모교 후배들에게도 큰 귀감이 되었다.
1978년 12월에 실시된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서울 관악구에 출마해 21만2천61표로 전국 최고 득표를 했으며, 차점 득표자와 14만1천여표의 전국 최고 표차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1997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97차 국제의원연맹(IPU) 총회에서 의장을 맡아 한국의 정치 발전과 국회의 명성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렸고, 세계 각국 의회 및 의원들 간의 협력과 국제 문제해결 등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이러한 공로로 1998년 민간인으로서는 가장 큰 영예인 대한민국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김前의장은 일찍이 일제하 1943년 대구교보(현 경북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일장기말소사건으로 강제퇴학을 당하면서까지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살아있다는 사실과 청년의 기백을 내외에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1950년 6.25한국전쟁이 나자 모교 법학부 3학년 재학생 신분으로 6월 28일 전국 대학생 중 학도병 1호로 혈서지원하여 애국심과 애교심을 만천하에 드러낸 바 있다.
1964년 대일굴욕외교반대 범 국민투쟁위원회 대변인을 역임하면서 일본의 침략성과 반성하지 않는 국민성을 국민들에게 전파하는데도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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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사랑하는 모교 영남대학교로부터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조국 대한민국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독립하거나 건국한 209여 신생국가들 가운데 산업화와 민주화에 모두 성공한 유일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일제 피식민지의 치욕, 6.25의 참화를 딛고 불과 60년 만에 이룬 한국의 성취를 세계인들은 '한강의 기적'이라 부릅니다. 이 역사의 기적 한 복판에 대구․경북이 있었습니다. 작년 2013년은 6.25 한국전쟁이 휴전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이곳 대구는 대한민국 최후의 교두보였습니다. 또한 대구는 이 나라 민주주의의 보루였습니다. 마침 다가오는 토요일은 제53주년 4.19학생혁명 기념일입니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이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승계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실로 4.19혁명은 한국민의 민주의지를 내외에 과시한 민족 양심의 거대한 분출이었습니다. 그리고 민주역사의 금자탑인 4.19의 도화선은 바로 1960년 2월 28일에 있었던 '2.28 대구 학생데모'였습니다. 전란의 참화를 겪어가며 수많은 국민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자유민주주의가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로 유린당하자 대구의 청년학생들이 궐기했고, 그것이 전국적 4.19학생혁명의 불을 댕겼습니다. 아울러 대구는 조국 근대화의 거점이었습니다. 우리의 산업화는 실로 놀랍게 이루어졌습니다. 일례로 우리나라는 2012년 6월 '20-50클럽'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20-50클럽'이란 1인당 국민소득 2만불, 인구 5천만명 이상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경제 강국들을 지칭합니다. 지금까지 이 클럽에 든 나라는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 등 6개국에 불과했습니다. 현대사의 기적으로 불리는 이 같은 산업화, 민주화에 있어 대구․경북은 튼튼한 견인차가 되었습니다. 아울러 우리 영남대학교는 이러한 민족중흥의 역사적 도정에서 국가와 지역사회의 지식기반을 창출하고 역량 있는 인재들을 배출하는 귀중한 베이스캠프의 역할을 훌륭히 담당해 왔습니다. 실로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한국의 경제성장을 '압축적 성장'이라고 표현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수세기에 걸쳐 이룬 '산업화, 근대화, 정보화'를 50년 만에 성취했다고 평가합니다. 이는 정치분야 역시 동일합니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래 불과 65년의 기간, 우리 헌정사는 다양하면서도 험난한 역사의 고비 고비를 넘어 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정치는 축적된 연륜에 걸 맞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준법의 규범이 되어야 할 국회가 거꾸로 탈법을 예사로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국회법 제5조 3항은 '국회의원 총선거 후 최초의 임시회는 의원의 임기 개시 후 7일에 자동 집회 '하도록 규정되어 있음에도, 이른 바 탈법적인 '개원협상'이 관례화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의무적으로 당연히 해야 할 국회의 院 구성 자체를 정치 흥정의 대상으로 삼아 입법기관의 공백을 방치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헌법 제54조는 국회가 국가 예산안을 심의 확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음을 명시하면서 제2항에 '정부는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예산안을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즉 12월 2일까지 예산안을 심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규정은 헌법 조문으로만 존재하는 사문화된 조항이 되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헌법 제49조는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가부동수인 때에는 부결된 것으로 본다'는 조항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어 위헌 논란을 입법부 스스로가 자초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파행적 정치행태는 국가사회의 가치관 형성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가 준법정신과 공공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고, 실정법 경시 풍조를 더욱 조장했습니다. 나아가 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한 냉소와 불신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법치주의에 반하는 이 같은 우리 정치현실에 대해 입법부의 수장을 역임했던 사람으로, 또 학부 시절 법학을 전공했던 정계 고참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러움을 금치 못하면서 여야 모두의 반성과 심기일전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되돌아보면, 제가 모교를 졸업한 것이 1953년, 정치에 첫 발을 디딘 것이 1957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만 5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간단없이 휘몰아치던 한국정치의 세찬 폭풍우를 뚫고 정치 현장의 한 모퉁이에서 이 나라 헌정사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었던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면서, 이 자리를 빌려 하나님의 가호에 감사 올리고 가족, 친지 여러분들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힘이 되어 주시고 버팀목이 되어주신 사랑하는 모교와 동문여러분들께도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산업화' '민주화' 이후 우리 앞에 대두될 역사적 과제는 '통일'과 '통합'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실현시켜 나가는데 모교와 영대인들은 변함없이 핵심적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미래는, 준비하고 대비하고, 훈련된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기 때문입니다. "태산이 높아 진 것은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河海가 깊어진 것은 작은 개울물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옛 성현의 말씀이 있습니다. 개교 70주년을 바라보는 영남대학교의 역사는 이를 실증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영대인 여러분! 해묵은 갈등에 종지부를 찍고 7천만 한민족이 마침내 통일을 이루는 시대, 우리가 당당히 주도하는 아시아 태평양시대, 세계가 하나 되는 인류공영의 시대가 멀지 않아 활짝 펼쳐질 것입니다. 이러한 필연적인 역사의 흐름은 모든 것을 용해시켜, 새로운 하나를 만들어 온 우리 영남대학교의 전통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화해와 통합의 신세기, 거시적 안목과 대승적 포용력을 갖춘 우리 嶺大 가족들의 활약은 더욱 더 중차대해지리라 확신합니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우직하고 순박하게 정도를 걸어 온 嶺大人들의 저력은 지난 60년간 조국발전의 밑거름 역할을 해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세계를 품고 미래를 여는 천마인들의 기상은 분명 위대한 통일과 번영의 시대를 여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김수한 前국회의장 인사말 요약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