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돈 대법원 법원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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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5-04-05 00:52 조회 1,547회 댓글 0건본문

"디지털도서관 구축 등 재판업무 지원에 최선"
지방 소재 법원 근무 판사 중 최초 법원도서관장
지리산 4번 종주, 안나푸르나 등정한 산 마니아
"법원도서관장이란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위상에 걸맞은 역량을 펼쳐야한다는 부담감도 있습니다"
김찬돈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79.법학)가 지난 2월 12일 제18대 대법원 법원도서관장에 취임했다. 金부장판사가 취임한 대법원 법원도서관장직은 전국 31개 법원장급 중 한 자리로 지방 소재 법원에 근무하는 판사중에서 취임하는 것은 金관장이 최초이자, 지방대 출신 판사로서도 최초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2000년부터 2년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대법원에서 근무했다. 13년 만에 대법원에 복귀하여 감개무량하다. 재판업무가 아닌 새로운 업무라서 설레임과 해보지 않았던 업무라서 신선함도 있다"는 金관장은 법원도서관장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법원도서관장의 역할에 비춰볼 때 지방에 있는 판사가 임용된 것은 전혀 뜻밖의 인사라는 것이 법조계 주위 분들의 반응이란다.
법원도서관장은 법원장급에 준하는 의전을 받는다. 지금까지는 서울에 근무하는 판사들이 임용되었기에 당연히 관사도 없었다. 지방 판사로 근무하던 金관장의 취임으로 갑작스럽게 관사를 마련하기도 했단다.
金관장은 일선 지원장 등을 거치면서 직원들의 화합은 물론 업무능력과 추진력이 강하다는 평을 들어왔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같이 있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편안하게 하는 재판외의 장점이 이번 법원도서관장 발탁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판사이기에 재판업무는 기본이다.
법원도서관은 대법원의 별도기관으로 정확하고 효율적인 재판을 위해 판사들에게 자료를 제공해주는 재판업무 지원이 주목적이다. 판례공보, 법률 및 학술서적 발간, 도서관 자료 및 도서를 전국 일선 법원도서관에 발송하는 업무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도서관 구축, 종합 법률정보 구축, 대법원 선고 판결 중 중요한 사안을 선별하여 영문으로 번역하는 업무를 하고 있으며, 법원 역사 보존을 위한 유물 관리, 법원사 편찬사업도 펼쳐오고 있다.
특히 사법제도가 시작된 조선말의 원본자료를 비롯해 100년 전 판결문 등 오래된 자료들을 수장고에 보존하고 있으며, 국내 서적 20여만 권을 비롯해 동양서 10여만 권과 서양서 7만여 권 등 37만4천여 권의 법률서적을 소장하고 있다. 매년 국내는 물론 해외 신간 법률서적을 구입하고 있다.
대법원 법원도서관은 1989년 9월 발족되어 제18대 헌법재판소장을 역임한 이강국소장이 초대관장을 맡았다. 역대 법원도서관장 중 2명과 조사심의관 출신 2명 등 법원도서관 출신 4명이 대법관을 역임했다.
"부친과 삼촌, 형님 등 가족들이 공무원이라 '의사'소리는 못 들었고 '판․검사'소리를 자연스럽게 듣고 법대를 지원했다"는 金관장은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부터 고시공부를 시작해 3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지만 4학년 2차 시험에서 1과목 과락으로 낙방했다.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여 84년 2차 시험을 앞두고 담티고개 부근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2차 시험을 치르지 못할 뻔 했다. 10일간의 병원 생활 후 퇴원하여 다행히 시험을 치르고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0일 동안 병상에 있으면서 使徒法官 김홍섭판사 평전과 그의 아들 김정훈 유고집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를 읽고 감명을 받았단다. 그 때 읽었던 책은 지금도 서가에 보관하고 있다.
3월 16일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使徒法官 김흥섭판사의 50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했다는 金관장은 30여 년 전 병상에서 두 분의 책을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니 감개무량함을 느꼈단다.
金관장은 등산 마니아이다. 대학 1학년 때인 79년 당시로서는 대구에서 가기가 쉽지 않았던 지리산 첫 등정을 시작으로 지리산을 4번이나 종주하고 설악산 등 국내 명산을 찾곤 했다. 지금은 등산은 자주 못하지만 틈틈이 한라산 등반과 2012년 10월에 9박 10일간의 일정으로 안나푸르나를 등정하기도 했다.
金관장은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990년 대구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대구지법 소년부지원장, 대구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대구지법 부장판사, 대구지법 영덕지원장과 포항지원장, 대구고법 부장판사, 대구지법 수석부장판사, 대구고법 부장판사 등을 거쳤다.
"판사는 숙명적으로 토씨 하나까지 본인이 써야 한다"는 金관장은 당사자로서는 인생이 걸린 문제이기에 사건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는 남에게 맡길 수 없으며, 판례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는 기본이며 때론 행위에 대한 판단을 위해 인간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기에 인문학 관련 독서와 사색을 통해 승복할 수 있는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한단다.
1959년 경북 경산 출신으로 부인 이연경여사는 경북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1녀를 두고 있다. 〈申在七편집부장, jclucky@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