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이전 마무리한 김관용 총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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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6-03-05 01:05 조회 1,643회 댓글 0건본문

“단순한 청사 이전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중심에 있었던 경북의 역사와 문화, 정신과 혼을 함께 옮기는 역사적인 과업이었습니다.”김 회장은 “산격동 반세기, 포정동 70년, 경상도로 보면 700년이라는 엄청난 역사가 함께 이전한 것”이라며 도청 이전의 의미를 설명했다.
신도청시대의 개막은 지역발전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김 회장은 “청사 이전으로 북부권에 새로운 성장축이 하나 더 생김으로써 기존의 대구, 구미, 포항과 함께 더욱 강력해진 사륜구동을 갖추게 된 셈”이라고 했다.
또한 도청이전과 함께 동해안발전본부가 동해안 현장으로 이전함에 따라 동해안권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으며 대구와도 상생협력본부를 통해 협력이 한층 더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청 신도시는 정부청사가 있는 세종시와 같은 위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세종시는 서울에서 남쪽으로 내려오고 경북도청은 북쪽으로 올라가 신기하게도 북위 36도 상에서 만난 겁니다.”
김 회장은 도청신도시와 세종시를 연결하는 동서발전축이 형성되면 한반도의 허리에 수도권과 남부권을 잇는 새로운 경제권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김 회장은 정신적인 면을 유난히 강조했다. “해방과 분단, 전쟁과 폐허, 지독한 가난으로 이어진 20세기 질곡의 역사에서 국난극복의 중심에는 항상 경북이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항일투쟁도 그랬고, 6.25전쟁 때도 낙동강방어선이 구축되어 나라를 지킨 마지막 보루가 경북이었습니다.”
김 회장은 “인구 16만 명의 안동과 천만 명이 사는 서울의 독립유공자 숫자가 비슷하다”며 “많이 배우지도, 많이 가지지도 못했지만 나라가 어렵고 백성이 힘들어 할 때마다 재산과 목숨을 주저 없이 바칠 수 있었던 것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혼과 정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도청이전을 통해 화랑정신, 선비정신, 호국정신 근대화의 새마을정신으로 이어지는 경북의 정신을 재조명하고 이를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승화시켜 나가겠다는 것이다. 신청사를 현대식 빌딩으로 하지 않고 한옥 기와지붕으로 결정한 것이나 신청사로 첫 출근하던 날 전통예법에 따라 천지신명께 도청 이전을 고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라고 했다.
이전지만 결정하고 정작 근무하게 될 줄은 몰랐다는 김 회장은 “많은 사람들의 반대와 엄청난 정치적 부담도 있었지만 역사가 정당하게 평가할 것으로 믿고 결단을 내렸다.”며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정체성 확립과 대화합 실현으로 새로운 정신문화를 꽃피우는 현장으로 만들 것”이라고 신도청 시대를 여는 각오를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