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남헌 이상배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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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6-06-05 00:48 조회 1,530회 댓글 0건본문

"서예가로 내 생을 마무리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
40여년 서예인생, 傘壽展 및 팔순 문집 발간
師道의 길 걸어온 교육자, 한시 230여수 지어
"이번 傘壽展은 네 번째 개인전으로 지난 40여 년 서예인생을 정리하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원로 서예가인 南軒 이상배동문(58.국문.남헌서예원 원장)이 傘壽(산수.80세)를 맞아 5월 3일 대구 동구 아양아트센터에서 팔순 기념 傘壽展과 팔순문집'미산(彌山) 옛집에 매화꽃 피면'출판기념회를 함께 열었다.
'미산'은 李동문의 고향인 경북 선산 해평면의 뒷산이자 증조부의 서당'미산정사彌山)精舍'에서 따온 것이다.
"지나간 인생을 돌아보니 뜬구름 같고, 10년이 今時同이라더니 80년도 역시 그렇다"는 李동문은"人生七十古來稀라는 칠순을 넘겨 여든까지 줄기차게 살아왔다. 지난 80년을 되돌아보니 한 생이 눈 깜빡 할 새 꿈결처럼 흘러 가 버렸음을 자탄해 본다. 하지만 그 어떤 일보다 서예가로 내 생을 마무리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李동문은 다소 늦은 불혹의 나이에 본격적으로 서예에 입문했다. 글씨를 배운 지 10년 만인 1986년 첫 개인전을 연 이후 10년 뒤 회갑기념으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2005년 古稀展을 할 때 건강이 유지되면 팔순 때 문집이라도 내겠다는 스스로의 다짐과 약속을 지킨 셈이라고 한다.
李동문은 南石 이성조 선생 문하에서 서예에 입문한 뒤 曉楠 박병규, 是菴 배길기, 菁南 오제봉 선생에게 사사받았다.
李동문은 국전과 대한민국미술대전 등 각종 공모전 40여회 입상, 대구미술대전과 한중교류전 등 국내외 단체교류전에 300여회 참가했으며, 대구시전 초대작가상 수상과 대구서가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대구서가회 회장 때에는 중국 안휘성문화청과 한․중을 오가며 한중서화교류전을 4차례나 개최했다.
또한 중국 계림의 詩碑공원에 李동문이 쓴 최치원의 한시'秋夜雨中'시비가 세워져 있다. 이 시비는 2004년 12월 중국 계림시 국제화평우호비림을 위해 초대 출품한 작품이다.
李동문은 文과 藝를 함께 하는 서예가이다."文이 되고 書가 되어야 하고, 주와 서술을 알아야 한다"는 李동문은 문장공부를 우선시 하며 글씨를 쓰기 전에 문장을 애독하며 암송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李동문은 소동파의 대작'적벽부'를 비롯해 웬만한 한시는 줄줄이 다 외우고 있다. 또한 비문과 제문뿐만 아니라 한시 230여수를 지었다.
李동문의 좌우명은'남만큼 하고서는 남 이상이 될 수 없다'이다."재주는 부족하지만 서예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자부한다"는 李동문은 유년시절에는 조부로부터 한학을 배웠다. 李동문은 다섯 살 때 만주로 이주한 부친을 따라 갔다가 얼마 안 되어 선산 해평으로 내려왔고, 부친은 광복 이후 귀국했다.
1963년 국문학과 졸업 후 청도 금천중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으로 해평중, 경일중, 대구고, 대구공고 등을 거쳐 1999년 대구동부공고에서 퇴임하기까지 약 40여 년간 교단에서 인간교육으로 후학을 가르치며 사도의 길을 걸어온 교육자이다.
교사 퇴직 후에는 경북대 정문 인근에'남헌서예원'을 운영하고 있다.
막걸리를 좋아하며 풍류를 즐기는 호방한 성격의 李동문은 국문학과 개설 50주년 때 국문학과동창회장을 맡는 등 국문학과 동문들과는 유대가 돈독하다. 특히 김원중 포항공대 명예교수와는 특별한 인연과 우정을 맺어오고 있다. 김원중 동문은 국문학과 동기일 뿐만 아니라 李동문의 자녀 6남매의 결혼식 주례를 서 주었다. 한 두 자녀도 아닌 6남매의 주례를 다 선다는 것은 흔치 않는 일이다.
李동문은 어찌 보면 좀 유별스럽다. 교사로 재직하면서 담임을 맡을 때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수학여행을 못가는 제자에게 여행비를 보태주어 반 학생 전원을 수학여행에 동참시켰다.
1958년 대학 1학년 군 입대 후 논산훈련소에서 국문학과 심재완 교수와 주고받았던 편지, 심재완 교수가 보내준 빛바랜 편지를 당시 논산훈련소에서 쓴 일기장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또한 원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형수와 2002년부터 2016년까지 44회에 걸쳐 주고받았던 편지와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도 보관하고 있다.
40여년 넘게 쓰다 남은 먹을 다 모아서 한 되가 넘고, 붓도 하나 버리지 않고 다 모아 수백 자루가 넘는다.
경북 선산 출신으로 부인 김춘자 여사와 사이에 1남 5녀를 두고 있다.
〈申在七 편집부장, jclucky@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