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도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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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6-05-05 00:47 조회 1,757회 댓글 0건본문

"다양한 활동 통해 시조의 대중화 등 민족시 정착 앞장설 터"
'한국대표 명시선 100'선정된 시인․화가․수필가인 만능 예술인
지역사회 문학관․미술관의 문학 사랑방 역할'목언예원'운영
"시조의 대중화, 시조의 국제화, 시조 바로세우기 등 민족시를 새롭게 정착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 (사)한국시조시인협회 제24대 이사장에 취임한 민병도 이사장(72.회화)이 취임 1주년을 맞았다.
(사)한국시조시인협회는 1964년 설립된 문학단체로 현재 등단 시조시인 130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閔이사장은 단독 사무실이 없었던 협회 사무실을 회원들의 십시일반 모금으로 지난해 사무실을 구입했으며, 년간지였던'시조미학'을 계간지로 전환했다.
또한 세미나, 심포지엄, 학술발표회, 시조 낭송대회 등의 행사와 시조 백일장을 통해 신인 발굴과 각 시․도별 행사를 통해 독자의 관심을 확장해 나가는데도 주력하고 있다.
"한국은 정형시(시조)를 민족시로 삼고 있는 나라가 유일한 국가"라는 閔이사장은"시조는 자국의 전통성을 보여줄 수 있는 특징이 얼마든지 있다. 글로벌화 될수록 민족시가 미래지향적이며 돋보여야 한다"고 강조하며, 시조의 제 모습과 자리 찾기, 민족시의 역사 정립과 체계화를 위한 노력을 집중적으로 해나가겠다고 한다.
"시조가 가지고 있는 제 값을 평가받아야 한다. 서구화의 물결로 의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시민들이 시조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閔이사장은"일본의 경우, 하이쿠(정형시)가 세계화 되어야 한다며 자국문화를 국제적으로 홍보하고 있으며, 동경대 총장 출신이 하이쿠국제교류협회 회장을 맡을 정도"라며,"값어치 있는 자산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다"고 한다.
閔이사장은 시조 중흥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76년 등단 이후 시조시인협회에서의 활동은 물론 청도와 대구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청도 출신 시조시인'이호우․이영도 시조문학상'을 주관․운영하는 운영위원장을 25년간 맡아 오고 있다. 시조전문지'시조21'발행인으로 10년 째 발간해 오면서 시조 중흥과 저변확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호우시인 생가 주변에 가람 이병기 선생을 비롯한 시조시인 26명의 시비를 제작한 청도시조공원 조성에도 앞장섰다.
'이호우․이영도문학기념회'회장을 맡고 있는 閔이사장은 올해는 이영도 탄신 100주년 기념행사로 그 어느 때보다 바쁘다."일본․중국 대표학자들을 초청한 국제시조대회 개최를 계획하고 있다. 심포지엄, 시집 번역, 육필시집, 시화전 등 다양한 준비를 통해'시조의 수도 청도'에 걸맞은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겠다"고 한다.
閔이사장은 시인이자 화가(한국화), 수필가인 만능 예술인이다.
대학교 2학년 때인 1973년 이영도 시인에게 시조를 사사하면서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서울에 있는 이영도 시인을 매월 만나기 위해 경산역에서 서울로 3년간을 다녔다. 이영도 시인과 주고 받았던 편지를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다.
"불편하다는 생각은 못했다. 오직 내 작품을 보여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선생님이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는 閔이사장은 돌이켜보면 그것이 아마 도전정신이 아니었을까 한다.
"영남대에 입학한 것이 내 생애 가장 큰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閔이사장은 이영도선생 뿐만 아니라 미대 민경갑교수(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로부터 한국화 사사, 심재완교수로부터 시조이론을 공부하는 등 영남대를 통해 각계 자기방면의 최고의 어른을 만났기 때문이다. 특히 모산 심재완 박사를 38여 년간 지근에서 보필하기도 했다.
그동안'설잠의 버들피리'등 시집 17권, 수필집 2권과 평론집 2권을 발간했다. 개인전도 23번이나 열었다. 화가가 개인전을 23회 개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閔이사장은 197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시조)로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회장, 대구시조시인협회장, 예총 청도지회장, 대구미술협회장,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2013년에는'한국을 대표하는 명시선 100'에 선정됐으며, 중앙시조대상, 가람시조문학상, 김상옥시조문학상, 한국시조작품상, 한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사립고 및 공립에서 22년간 교사로 재직했던 閔이사장은 대구미술협회장으로 바쁘게 지내던 1999년 고향인 청도군 금천면으로 귀향했다. 자신의 시간을 유폐시키고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목언예원(木言藝苑)을 건립한 것이다.
"지역사회와 후배들을 위해 작품도 좋지만 좋은 환경에 제대로 된 창작공간을 남겨두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서 목언예원을 건립했다"는 閔이사장은"목언예원은 지역사회에 문학관과 미술관을 대신해주는 문학 사랑방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閔이사장의 꿈은"자타가 공감하는 이것은 민병도의 그림이고 시조다. 내 삶이 녹아 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申在七 편집부장, jclucky@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