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명 영남대학교산악회 50년사 발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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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8-04-05 00:52 조회 1,334회 댓글 0건본문

'정확'을 원칙, 문서화 된 문헌 그대로 가감 없이 게재
삶 자체가 산악회와 적십자사 활동, 영남대산악회 산 증인
"중간 지점에 역사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가집니다"
영남대학교 산악회 50년사 발간위원장을 맡아 1년6개월여 만에 50년사를 발간한 이동명 동문(65.섬유.안동섬유 대표).
2016년 7월 발족된 50년사 발간위원회는 이동명 위원장과 유창덕 부위원장을 비롯해 권성혁․노규영․이수진․김기수․김선실 위원으로 구성되었다.
"그동안 30년사, 40년사 발간을 추진했지만 무산되었다. 영남대 산악회와 OB산악회의 스토리를 잘 알고 있기에 역사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강박감, 어쩌면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발간위원장을 자청했다"는 이 위원장은"후배들에게 전해줄 수 있고 맥을 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발간 의미를 부여한다.
"발족 초기에는 자료, 예산, 실행여부가 불투명했다"는 이 위원장은"박물관 보관 기존 자료와 회원들이 보관하고 있는 자료들이 접수되고 예산도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는 등 회원들의 성원덕분에 자신감을 가지고 발간을 추진했다"고 한다.
"정확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래서 자료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문서화 된 문헌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실었다"는 이 위원장은"4천5백여 장의 사진을 연도별, 행사별로 체계적으로 분리하는 작업도 쉽지 않았다. 134명의 OB 회원 중 11명이 사망했다. 사진 분류 작업에서 고인이 된 회원들도 최대한 들어갈 수 있도록 편집했다"고 말한다.
"발간을 위해 40여 회의 모임, 아이디어 공유를 위한 수백 통의 통화 및 단톡 3천여회 이상을 주고받았다"는 이 위원장은"앞으로 주축이 될 90학번 이후 후배들의 참여도기 높아 고무적이었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삶의 자체가 산악회와 적십자사 활동이었다.
1986년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 산악구조대 총무로 인연을 맺은 이후 긴급인명구조대장, 상임위원, 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고1때부터 산악회 활동을 시작해 대학 입학과 함께 산악부에 가입했다. 대륜고 OB산악회장, 대한산악연맹 대구연맹 학생․사업이사, 경북산악회 회장을 역임했다.
영남대 OB산악회 부회장 10년과 회장 8년의 이력에서 보듯이 영남대산악회의 산 증인이다. 2005년 대구시산악연맹 팔공산악상 대상을 받았다.
"산악회 활동을 하면서 내 자신보다는 후배 양성에 목적을 두었다"는 이 위원장은"OB산악회 회원은 많게는 50세의 나이 차이가 나지만 남․여와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형'으로 호칭된다"며, 젊은 후배들과 대화하고 함께 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50세의 나이 차에도'형'이란 호칭은 산악회 활동을 통해 저절로 몸에 베인 자연스러운 전통으로 서로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며, 산악 활동을 통해 형제 이상의 우의를 가져오고 있다"는 이 위원장은 후배들에게 먼저 전화를 걸고 후배들에게 다가가는 선배이다.
"후배들에게 말로만이 아닌 모범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관심을 실행으로 옮겨야 되는데 잘 되질 않는다"는 이 위원장은 후배들이 관심을 간섭으로 들릴 수 있어 안타까울 때도 있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산에 미쳐 3남매의 백일날에도 산에 갔다. 해외원정 등반도 14번이나 했다"는 이 위원장은"당시 자녀들과 함께 하지 못해 부인과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팔공산에서 열린 전국 60km극복 동행대회에 영남대 산악회 OB팀의 일원으로 참가해 2등을 차지했다."출전한 3명의 합친 나이가 200살이었다. 이런 모습들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올해도 참가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지방대 최초의 해외원정 등반이었던 1972년 일본 북알프스 해외 등반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해외 출국을 위한 신원조회만도 3개월이 걸렸다. 일본 복강교육대의 도움을 받아 일본 원정을 할 수 있었다"는 이 위원장은 71년 설악산 등반을 온 일본 복강교육대 산악회 팀과의 인연이 발전되어 일본 원정에 이르게 되었으며, 해외원정 등반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1989년 안나푸르나 2.4봉 정상 정복 후 정갑용․김용규 동문이 실종되는 아픔을 겪었다"는 이 위원장은"내년이면 사망 3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무언가를 해야 할지를 조심스럽게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