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하 애국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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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9-03-05 00:47 조회 1,173회 댓글 0건본문

"분단된 조국이 아닌 평화적인 남북통일 하루빨리 왔으면....."
안동농림학교 4년 때'조선독립회복연구단'서 항일운동
46년 교육계 봉직 후진양성, 99년 독립유공 대통령표창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나라의 고마움을 알고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자택에서 만난 장병하 애국지사(55.법학, 92세)는"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라사랑의 의지를 다지는 3.1운동 100주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현재 대구․경북에 생존하고 있는 애국지사는 3명(대구 2명․경북 1명)이며, 전국적으로는 35명이다. 장 지사는 2002년부터 2013년까지 대구․경북 애국지사 모임인 대구경북생존지사협의회 회장을 맡아 매월 모임을 해왔다. 생존 애국지사가 3명으로 줄어들어 2013년부터 모임을 그만두게 되었다.
장 지사는 금년 92세이다. 대구․경북 생존 애국지사 중에는 건강한 편으로 3.1절 기념식 등 각종 행사에 애국지사를 대표해 참석하는 등 애국지사를 대변하고 있다. 지난해 팔공산에서 개최된 동문단합 등반대회에도 참석했다.
"3.1운동은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이후 10여 년간 압박과 착취, 서러움을 겪으면서 국권을 찾아야한다는 자각에서 일어난 비폭력 독립운동으로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약 2백여만 명이 참여했다"는 장 지사는"3.1운동을 시작으로 임시정부 수립과 독립운동 전개와 투쟁을 통해 조국의 광복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3.1운동은 인도의 독립운동, 중국 5.4혁명, 필리핀 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칠 만큼 그 의의가 크다고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를 이끌면서 매일 나라 걱정의'每飯不忘'을 당부했다"는 장 지사는"젊은 세대들은 착취와 압박 등 식민지 경험이 없다. 잘 사는데 너무 익숙해져 고생을 모르고 나라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고 있는 느낌도 든다. 나라가 없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나라의 고마움을 알고 국권 수호의 의지를 다져 나라와 겨레를 걱정하는 국민이 될 수 있다며, 젊은 후대들이 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 지사의 바람은 잘 사는 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국민 각자가 종사하는 분야에서 세계 제일가는 힘을 길러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를 넘보지 못하는 국력을 기르고 평화적인 남북통일을 위해 뜻과 힘을 모으는 것이다.
"일본이 독도를 넘보는 것도 우리가 국력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장 지사는"정치․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힘을 길러 스스로 자주 국방을 할 수 있는 국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국이 분단된 지 70여년이 되었다. 분단된 조국이 아닌 하나 된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장 지사의 소망은"평화적인 남북통일이 되어 잘사는 한겨레 한나라의 그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1928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장병하 애국지사는 안동농림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조직된 조선독립회복연구단에 가입해 항일운동을 하다가 체포돼 안동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당시 안동농림학교 내에는'조선독립회복연구단'과 문예활동 항일운동을 펼친'명성회'등 2개의 비밀조직이 항일운동을 주도했다고 한다.
당시 4학년이자 17살이었던 장 지사는"어차피 일본군대에 끌려가 죽을 바엔 독립을 위해 싸우고 일제를 내쫓고 국권 회복하는 길을 찾아 연구하자고 마음먹고 조선독립회복연구단에 가입했다"고 한다.
안동농림학교 조선독립회복연구단과 명성회의 거사계획은 1차 1944년 12월, 2차 1945년 2월 17일에 이어 최종 거사계획은 1945년 3월 10일이었다.
이들의 계획은 안동경찰서와 안동 헌병대를 습격해 무장하고 읍사무소를 습격하여 방송시설을 점거해 의거 사실을 알려 안동시민 모두가 함께 하는 항일운동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사 내용을 탐지한 일경들이 3월 7일부터 3월 10일까지 장 지사를 비롯한 83명을 검거하여 안동경찰서 유치장에 수감했다. 구타와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 안동형무소에서 약 6개월간 수감생활을 하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아 장 지사를 비롯한 전원이 기소유예로 8월 16일 석방됐다.
이들 안동농림학교 독립운동 활동상은 광복회 경북도지부 안동시지회에서 간행한'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에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안동에 있는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는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의 출옥사진 등 관련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장 지사는 사건 발생 55년만인 1999년 광복절에 독립 유공 대통령표창으로 애국지사에 이름을 올렸지만, 애국지사로 이름을 올리기까지 그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장 지사는 석방 후 교육만이 민족의 힘을 키울 수 있다는 신념으로 교육계에 투신했다. 1946년부터 1993년까지 교사로, 교육행정직으로, 죽전초등 교장 등 46년 4개월 동안 교직에 재직하며 후진양성에 앞장섰다.
"나라를 잃은 망국민이 되면 자유는 물론 모든 것을 잃고 살아야한다는 것을 후손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하는 장 지사는"평화적인 남북통일을 위해 무언가 기여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申在七편집국장, jclucky@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