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인이 만난사람] 이동형 영남대학교 교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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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5-05-19 13:41 조회 356회 댓글 0건본문
1. 6년간 법학전문대학원장을 이끌었습니다. 원장직을 맡으신 기간 동안 기억나는 이야기와 성과 등을 부탁드립니다.
2018년 8월부터 2024년 7월까지 로스쿨 원장직을 수행했습니다. 제가 임명된 직후부터 부원장으로 함께 일한 고 조임영 교수와 함께 3학년 학생들의 학점과 모의시험 성적 등을 토대로 변호사시험 준비를 위한 상담을 실시했는데 그 덕분인지 2019년 1월에 있었던 제8회 변호사시험에서 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 중에서, ‘로스쿨 8기 실제 입학인원 대비 합격률’ 2위를 기록하였습니다. 같은 기준으로 2020년 제9회 변호사시험에서 1위, 2021년 제10회 변호사시험에서 다시 2위를 기록했습니다.
2023년에는 검사 시험에 7명이 합격하고 로클럭, 즉 재판연구원 시험에도 3명이 합격하여 재학생 기준 검사시험 합격 전국 1위를 기록했고, 작년에도 재학생 중에서 로클럭 시험 5명, 검사 시험 6명이 합격하여 영남대 로스쿨 사상 최다합격을 배출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성과를 낼 것을 기대하고 또 바라고 있습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이런 성과로 동문들의 관심이 커졌고, 동문들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총동창회에서 격려해 준 것은 물론, 로스쿨 졸업생들도 2022년부터 졸업 1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서 매년 수천만 원씩 학교발전기금을 내고, 2023년에는 법대 선배님이 신입생환영회를 해 주었고, 작년에 재경 법대·로스쿨 동문회에서 신입생환영회 행사를 하면서 재학생들의 변호사시험 대비 특강경비로 3,400만 원, 올해 1,000만 원 등 발전기금을 기탁해 주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2. 영남대 재학시절의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입학 후에 사법시험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법시험은 매년 전국에서 10,000명 이상이 지원해서 최종 300명이 합격하는 시험이었는데, 저는 거의 매일 도시락 두 개를 싸서, 당시 영남대 도서관이던, 대명동의 영남이공대학의 도서관에서 공부했습니다. 당시는 학교 고시원인 의인정사에서 공부한 친구들도 많았는데,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학교 졸업 후에는 집 근처의 고시원 등에서 공부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졸업 무렵까지는 합격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의 역량으로는 무모한 계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4학년 재학 중인 1985년에 1차 시험에 처음 합격했고, 군입대 연기를 위해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고, 1990년 제32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습니다.
3.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1996년부터 2005년까지 영남법무법인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셨는데, 그 시절의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1991년에 사법연수원에 입소하여 2년간의 과정을 마치고, 1993년 2월부터 군법무관으로 입대해서 3년간 근무하고 1996년 3월에 제대한 후에 대구의 변호사 사무실에 취업해서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주로 민사사건, 자동차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사건을 많이 했습니다.
1998년부터는 영남법무법인에서 구성원변호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전문영역 개발을 위해서 변리사 업무를 하면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2000년에 계명대학교 대학원에 진학도하고, 국내외의 지적재산권 관련 세미나와 교육과정에 참여하였으며, 대구테크노파크, 디지털산업진흥원과 벤처기업 등의 지적재산권 분야 자문변호사로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4. 1997년 영남대학교 법과대학 겸임교수로 재직하였고, 그 이후 2005년 로스쿨이 출범하고 실무변호사로 개원에 참여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영남대학교에 처음 강의하게 된 것은 1997년 2학기 시작 무렵, 당시 민사소송법 교수가 다른 학교로 이직하는 바람에 학교에서 저에게 강의를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 법학과 교수들이 이직이나 안식년 등으로 강의하지 못하게 되는 과목을 제가 강의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형법, 형사소송법, 민법 등 다양한 과목을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로스쿨 출범과 관련해서는 당시에 일정 비율 이상의 실무교원 확보가 필요했습니다. 당시 법대 교수들은 제가 이론과 실무를 모두 겸비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저에게 교수로 지원할 것을 권유했고, 절차를 거쳐서 2005년에 모교 교수가 되었습니다.
5. 교수로서 가장 보람된 순간은?
법학전문대학원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입학하는 곳이므로,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다닌 학생들이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 뜻을 이루면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부유한 부모의 자녀들만이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입학하여 뜻을 이루는 학생들도 많고,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도 의외로 많습니다. 그들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법조인이 되어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보람있는 일입니다.
6. 영남대 교수회 의장으로서의 목표와 각오를 말씀하신다면?
영남대 교수회는 교수들의 복리 증진, 교권 확보, 학내 민주화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저는 그 본연의 목적에 맞게 교수회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최근에 시대의 변화나 학교를 둘러싼 여러 상황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교수들의 복지, 학교에서의 지위 등이 많이 후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이 개선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교수들 서로 간의 관계 형성도 중요하므로 교수회를 교수들 간의 소통과 교류, 화합의 장이 되게 하려고 합니다. 학교는 교수들의 직장으로, 학교가 발전하는 것이 교수들의 성장·발전에 보탬이 될 것이고, 교수들에게 보람도 느끼게 해 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가 잘되고 대외적인 위상도 높아지면 좋겠습니다. 특히 학령인구가 줄어들어서 앞으로 10년, 20년 안에 큰 위기가 올 것이라고 말하는데, 학교가 위기를 극복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지속되고 발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7. 마지막으로 동문으로서, 모교의 교수로서 동문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저는 어떻게 하다 보니 모교 동문으로서 모교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모교 총장과 동문회 간에 갈등이 있고, 그로 인해서 학교의 구성원들, 특히 우리 후배인 학생들이 알게 모르게 피해를 보고 있고, 그것이 학교 자체의 지속가능성과 발전에 장애 요인이 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빨리 종료되고 모교와 동문이 화합하여 학교의 지속·발전을 위해서 함께 노력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