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심(公心)을 찾아야 보수(保守) 재건된다”
페이지 정보
작성일25-07-29 13:52 조회 95회 댓글 0건본문
주호영(78.법학)
국회부의장
국회의원(대구 수성갑)
윤석열 전(前) 대통령의 계엄과 탄핵은 지난 20년 기신기신 이어가던 한국 보수 정당에 사실상 사망 선고를 내린 사건이다. 겉으론 ‘보수(保守)’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어떤 가치와 태도를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보수가 보수의 가치를 모른다”는 말이 비판이 제기된 지도 벌써 오래됐다. 그간 수차례의 선거를 거치며 자성(自省)의 목소리는 이어졌지만, 실질적인 변화와 실천은 거의 없었다.
그 사이 당 내부는 점점 ‘사익(私益)의 정치’로 기울었다. 당권 경쟁은 원칙보다 세력 다툼으로 변질됐고, 공천 과정은 공정성보다 줄서기와 충성 경쟁에 휘둘렸다. 정당(政黨)이라는 공적(公的) 기구가 공공선(公共善)을 위한 집단이라는 인식은 옅어지고,‘내 사람을 심는 데 바쁘다’는 자조적인 비판이 당 안팎에서 오래전부터 흘러나왔다. 그 근간에는 바로 ‘공심(公心)’의 실종이 있다.
조직 윤리와 공동체 정신이 무너진 정당은 유능한 인재(人才)가 머물지 않는다. 책임지려는 인물보다 책임을 피하려는 이들이 살아남는다. 리더십의 뿌리는 약해지고, 정당은 위기 때마다 흔들린다. 문제는 악순환이 반복될수록 쇄신의 동력도 함께 잃는다는 데 있다. 공공성, 헌신, 책임감 같은 전통적 보수의 미덕(美德)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미덕(美德) 가운데 하나는 ‘공정한 경쟁’이다. 하지만 보수 정당은 아직도 체계적 인사 평가 시스템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의원 개개인의 의정 활동을 정량(定量)·정성(定性)적으로 분석하는 장치도, 결과에 따라 공천에 영향을 미치는 피드백 구조도 허술하다. 평가 없이 공천(公薦)이 지나간 자리는 사천(私薦)이 자리 잡았다. 실적보다 줄서기가 우선인 환경에서는 ‘준비된 정치인’이 자랄 수 없다.
정책적 관점에서 보수의 경쟁력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과거에는 자유시장과 국가안보를 중심으로 뚜렷한 정치적 노선을 제시했지만, 현재는 급변하는 사회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후위기, 플랫폼 노동, 고령화 등의 복잡한 이슈들에 대해 보수 진영이 제시할 수 있는 해법을 묻는다면, 그저 당황한 웃음뿐이다.
이념적 대립을 넘어서서 국민들이 체감(體感)할 수 있는 실용적인 대안이 필요한 시대다. 디지털 전환, 지속가능한 성장, 스타트업 지원, 균형된 복지 같은 복합적인 의제가 넘쳐나는 시점에서, 보수 정당은 여전히 낡은 과거의 틀에 갇혀 있는 모습이다. '창조적 보수'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지만, 그에 대한 준비는 과연 충분한가 자답할 때, 나오는 건 한숨뿐이다.
세대 간 단절 문제 역시 매우 심각하다. 청년층과의 소통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고, 새로운 노동 문화와 젊은 세대의 정서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 ‘젊은이들은 마라탕을 원하는데, 우리는 보신탕을 내놓는’ 격이다. 이는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세대 감각의 단절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입으로는 젊은 세대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태도가 부족하다.
정당은 본질적으로 의제(Agenda)를 설정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지금의 보수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나? 지금의 보수는 더이상 미래를 설계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 정책연구원과 싱크탱크는 형식적으로만 존재할 뿐, 의사결정 과정에 실질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의제를 발굴하고 국가의 비전을 선도할 능력을 상실했다면, 그 정당은 결국 단순한 권력 경쟁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바뀌어야 한다. 정책 경쟁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싱크탱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학계·언론·시민사회와의 협업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기적인 토론회와 정책 발표회를 통해 공론장(公論場)을 형성하고, 그 결과를 구체적인 정책 의제로 전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의제 주도권을 회복해야 한다.
공심(公心) 회복은 결국 사람을 바꾸는 데서 출발한다. 능력 중심의 인사도 중요하지만, 공익을 위한 태도와 책임감을 기준으로 인재를 발굴해야 한다. 개인의 봉사정신, 헌신, 도덕성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이른바 '공심지수(公心指數)'가 높은 후보가 공천을 받는 구조가 정착되어야 하지 않을까.
당 내부의 공동체(共同體) 의식도 다시 일으켜야 한다. 정당은 단순한 이익집단이 아니다. 진정한 동지애(同志愛)와 연대(連帶)가 살아 있는 정당만이 위기 때 결속할 수 있다. 연찬회, 워크숍, 숙의 토론이 활성화되고, 공감과 책임이 보상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함께 한다’는 의식이야말로 보수 정당이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보수 재건(再建)은 결국 내실(內實)을 다지는 문제다. 중도층, 무당층, 청년과의 소통 방식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그들의 삶에 진정성 있게 귀 기울여야 한다. 단순히 홍보성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언어로 공감하고 그들의 플랫폼에서 만나야 한다. SNS 생중계나 팟캐스트 출연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 소통의 본질적인 방식이 되어야 한다.
정치는 국민들의 신뢰(信賴)를 바탕으로 움직인다. 신뢰는 선언이 아니라 태도와 실천으로 쌓인다. 희생과 헌신, 공심의 회복, 체계적 인사 시스템, 미래지향적 정책, 세대간 공감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국민은 다시 마음을 열 것이다. 확장보다 내실, 과거보다 미래, 기득권보다 공공(公共)의 가치가 앞설 때 비로소 보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솔직히 우리에게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없다. 준비되지 않은 정당은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없다. 국민의 신뢰를 잃는 순간, 대선 후보도, 정치적 미래도 함께 사라진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한국 보수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심(公心)을 회복(回復)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