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칼럼] 삽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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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5-09-26 09:28 조회 83회 댓글 0건본문
김정기(80. 경영)
· 영대신문사 출신
· 전 포항공과대학교 교직원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라는 말이 있다. 남녀가 정분이 나서 하룻밤에 만리장성처럼 기나긴 정분을 다 쌓는다는 뜻일까? 아니다.
과거에 낙방한 한 선비가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에 돈은 다 떨어지고, 배는 고프고, 거지꼴이 다 되었다. 힘들게 길을 걷고 있는데 웬 예쁘장한 아낙이 오라고 손짓한다. 이게 웬 떡? 아낙은 선비를 자기 집에 데리고 가서 깨끗하게 목욕을 시켜주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히고, 진수성찬을 차려주고,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관헌들이 몰려오더니, 대뜸 잡아가서 장성을 쌓는 곳으로 데려가더란다.
사연인즉 이렇다. 아낙의 남편에게 장성 쌓으러 오라는 입영통지서(?)가 오자, 남편을 너무너무 사랑했기에 머리를 굴려서, 길가는 거지를 하룻밤 잘 대접한 후 남편 대신 보낸 것이다. 그 낙방 선비는 하룻밤을 잘 보내고, 그 대가로 평생 만리장성을 쌓는 고통 속에서 살았다. 젊은 나이에 장성 노역에 동원되면 거기서 대부분 죽을 때까지 일을 하고, 극소수만 늙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중국의 민요에 장성에 간 남편이나 아버지, 아들을 그리는 내용이 많이 있다.
장성 넘어 사는, 그들 기준으로 오랑캐들은 산 위에 높이 쌓아 올린 장성을 도저히 침공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역사에서 장성이 뚫린 적이 몇 차례 있었다. 누군가가 내부에서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아편전쟁 때는 영불 연합군이 장성을 넘어온 것이 아니라 천진 앞바다로 들어와서 북경을 초토화했다. 그토록 견고한 장성이 서구 오랑캐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만리장성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삽질’이었다.
삽질은 70~80년대의 군대용어다. 장병들이 여유가 생기면 쓸데없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기 때문에 항상 놀리지 않고 무언가 일을 시킨다. 굳이 할 필요도 없는데 힘들게 삽으로 땅을 파게 한다. ‘삽질=군대 작업=쓸데없는 일’을 뜻한다.
미국 나사(NASA)의 우주인들은 우주의 무중력 상태에서 볼펜이 써지지 않아 큰 불편을 겪었다. 그래서 나사에서는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들여서 무중력 상태에서도 써지는 볼펜을 개발했다. 그런데 그때 소련의 우주인들은, 우주에서 연필을 사용했다. 나사의 삽질이다. ‘암보험을 들었는데 중풍에 걸렸다’라는 어느 광고 카피에서는, 암보험을 든 것이 삽질이다.
산업공학(혹은 생산공학)이라는 학문을 탄생시킨 미국의 프레데릭 테일러(Frederick Winslow Taylor)는 어떻게 하면 삽질을 잘할 수 있을까를 연구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무거운 쇳덩이를 드는 삽이나 가벼운 면화를 드는 삽이나, 건장한 성인 남성이 드는 삽이나 연약한 여성과 어린이가 드는 삽이나 일률적으로 크기가 같았다. 그는 <삽의 과학(Science of Shoveling)>이라는 논문에서, 작업자와 재료에 따라 삽의 크기를 달리 해야 한다고 했다. 테일러의 ‘과학적 삽질’은 작업수행 방식의 혁신을 가져왔고, 관련 학문의 초석을 다졌다.
라때는 영대신문 수습기자가 되려면 높은 경쟁을 뚫어야 했는데, 요즘은 지원자가 별로 없다고 한다. 방송국도 사정은 마찬가지. 총학생회장 출마자도 라때는 10명 이상이던 것이 지금은 매년 1~2팀에 불과하다.
취업난이 가중되다 보니 대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취업이 넘버 원 미션이 되었다. 토끼풀(TOEFL) 뜯고 바퀴벌레(Vocabulary) 잡고 공자알봉인(공모전, 자격증, 알바, 봉사활동, 인턴)에 투자하며 취업역량을 기를 시간이 빠듯한데, 학생단체 활동으로 소중한 시간을 삽질로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필자를 비롯한 많은 영대신문 출신들이 취업과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학생기자 활동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며 인간관계를 넓힌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굳이 언론계가 아니더라도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통찰력이나 표현력, 대인관계 기술, 특히 보고서·기획서 등을 위한 글쓰기 능력은 어느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며, 학생기자 활동을 통해 매우 효과적으로 연마할 수 있었다.
강의실이나 도서관 외에도 배움의 기회가 지천에 널려 있다. 영대신문사뿐 아니라 방송국이나 학생회, 동아리 등 다양한 경험은 나중에 사회 활동의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지혜는 경험의 딸(Wisdom is the daughter of experience)”이라고 했고, 아인슈타인은 “지식의 유일한 원천은 경험(The only source of knowledge is experience)”이라고 했다.
옛날 중국인들은 죽음으로 장성을 쌓았지만, 오늘날 중국인들은 그 어마어마한 관광수익금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사에서 개발한 우주 볼펜은 관련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암보험만 든 것은 더 완벽한 보험을 들기 위한 시행착오였다. 다양한 학생 활동은 취업의 걸림돌이 아니라 취업역량을 기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삽질을 ‘잘’ 해야 한다.
김정기 동문은 경영학과 80학번 출신으로 재학 시 영대신문사에 몸담았고, 포항공과대학교 교직원 정년퇴직 후 가창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