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과 국가발전의 모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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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2-05-05 00:52 조회 890회 댓글 0건본문

노순규(72.경영)
(사)사회안전예방중앙회 교육위원장
한국기업경영연구원 원장
한국노동교육원 객원교수
필자가 중학교 3학년 때인 1968년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이 반포되었다. 첫귀절에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된다. 친구들도 경쟁하듯 그 전문을 외운 덕분에 기억력도 발달되었다고 생각된다.
박정희 대통령의 국민교육헌장의 철학은 경제모델 곳곳에 반영되어 세계무대를 향해 성장의 질주를 가하기 시작했다. 경제성장의 전략과 미래비전으로 승화되기 시작했다. 몇차례의 이어진 경제개발 5개년계획도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지난한 조선시대 600년의 빈곤으로 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뭔가 특별한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의 통치철학은 개인, 사회, 국가 등이 모두 하나로 뭉쳐 일원화 될 것을 강조했다. 즉, 국민이 잘살기 위해서는 부국강병책과 더불어 의식개혁도 필요했던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1953년에 평화를 위한 원자력을 주장했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도 1957년에 미국에 의뢰하여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 설계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덧붙여 상업용 원자력발전소를 만들었다. 덕분에 중화학공업도 성장했다.
1975년에 착공된 월성1호기는 캐나다기술의 가압중수로 원자력발전소였다. 고리원자력발전소는 경수로로 추진되고, 월성원자력발전소는 중수로로 추진되었다. 박 대통령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우리를 감시해도 좋으니, 중수로건설을 허락을 요청했다. 이후 전천후 발전소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박 대통령의 원래 목적은 언제든지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원자력의 상업화에 도전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이때 박 대통령은 우리의 힘으로 우리나라를 방어할 태세를 갖추고 싶어했다. 약소국이 강대국의 대열에 들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핵보유 뿐이기 때문이다.
중수로핵발전소의 건설은 한국의 기술가치와 전략가치로도 필수적이었다. 기술가치로는 연료개발 때문이고, 전략가치로는 핵무장의 전쟁 억지력 때문이다. 이때 월성원자력발전소를 전쟁의 무기화까지 가능한 국내 유일의 핵관련시설을 설계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경제강국과 군사강국을 넘어 어느 나라도 무시못할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다. 이것이 바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의 귀결이고,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일류화로 나아가고 강한 국가로 되는 훌륭한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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