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중의 책, 양서를 읽자 - 이강호(59.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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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0-05 00:54 조회 1,668회 댓글 0건본문

가을이다. 책읽기에 가장 알맞은 계절이 가을이다. 그래서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느냐가 가장 관심거리인데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
우리는 인생에서 정신적 은혜를 책속에서 얻는다. 인간은 반추동물이다. 그저 많은 책을 머리에 채워 넣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우리가 삼킨 것을 새김질하여 소화시키지 않는다면 책은 아무런 힘과 자양을 주지 못한다.
다양한 저자의 저술과 온갖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은 머릿속에 혼란과 모호함을 일으킨다. 책을 무턱대고 많이 읽는 것은 두뇌를 산만하게 할 뿐이다.
독서를 통해 무엇인가 유익한 것을 끌어내려고 싶으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저자의 책만을 읽도록 해야 한다. 양서로 정평이 나 있는 책을 읽는 것이다.
우리가 독서를 하는 동안 인생에서와 같은 여러 현상들을 볼 수 있다.
어떨 때는 여름철 파리처럼 득실거리며 모든 것을 더럽히고 있는 구제할 길 없는 속된 무리와 부딪히게 된다.
그것 때문에 실제로 나타나고 있는 악서의 범람과 좋은 씨앗의 발아를 방해하는 독초 이상의 번식이 일어나게 된다.
악서는 무익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코 유해하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문학서 가운데십중팔구는 독자의 호주머니에서 조금이라도 돈을 더 뜯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같은 해독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우리는 반드시 읽지 말아야 하는 것을 먼저 배워야 한다. 대중에 인기가 있는 책, 평판이 자자한 책은 아예 읽지 말아야 한다. 발행한 첫해가 그 존재의 마지막 해가 된다.
악서는 아무리 적게 읽어도 지나치지 않고 양서는 아무리 많이 읽어도 과(過)하다고 할 수 없다. 악서는 마음을 흐리게 하는 정신적 독이다.
반면에 양서는 마음을 살찌게 할 뿐만 아니라 사물을 높고 깊고 넓게 보도록 안목을 키우게 하는 금․은과 같은 보석이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고금의 양서를 읽을 줄 모르고 그저 그 시대의 새로운 작품만 읽기에 바쁘다. 때문에 오늘날 상당한 지식인들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같은 주제를 우려먹으며 같은 주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해악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질적 독물과 정신적 독물의 차이는 물질적 독물은 대부분 불쾌하지만 저급한 악서는 매혹적이라는 점이다.
또 악서는 편향, 편견으로 흐르게 한다. 사상이건, 종교이건, 정치이건 한쪽으로 치우치면 광인이 되는 것이다. 광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 악서이다.
편향, 편견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면 절대로 빛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편향, 편견은 어두운 감옥인 것이다. 편향, 편견은 크고 작고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균형 속에서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수 있다. 편향, 편견은 모퉁이에 있는 것이고 균형은 중앙에 있는 것이다. 중앙에 있어야 균형이 잡힌다. 균형의 길을 따라야 한다. 모든 신비와 희망이 그 속에서 드러나게 된다.
말하자면 뿌리에 바탕을 두고 그 바탕을 찾는 것이 양서이고 꽃과 잎에 집중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 다시 말해서 지엽말단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악서이다.
여기에 더하여 균형을 잡아가도록 하는 것이 양서이고 그와 반대로 편향, 편견의 한 모퉁이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악서라는 것이다.
이처럼 양서와 악서가 주는 영향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우리는 기필코 악서를 멀리하고 양서를 가까이하며 즐기도록 해야 한다. 양서를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