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담한담] 역사(歷史) 혹은 신화(神話), 햇볕에 바래거나 달빛으로 물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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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3-01-05 00:45 조회 549회 댓글 0건본문
환단고기(桓檀古記)와 고조선(古朝鮮) 논쟁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등장해 우리 상고사(上古史)에 큰 파장을 몰고 온 책이 환단고기다.
단군(檀君)과 고조선의 역사가 1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지금의 중국은 물론 중동지역까지 지배했다는, 좀처럼 믿기 힘든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1980년대 말 첫 출간 이후 대학가에는 연구 동아리가 생기고 일부 재야(在野) 학자들이 “한민족의 기원과 역사를 근본적으로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신드롬’으로까지 확산된 논란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물론 주류 역사학계는 이 책을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위서(僞書)로 취급한다.
삼국유사의 단군 기록도 신화에 가까운 내용인데 하물며 고대 수메르 문명까지 우리 역사로 주장하는 것은 민족주의에 편승한 혹세무민(惑世誣民)일 뿐이라는 반박이다.
역사와 신화는 서로 씨줄과 날줄로 얽혀 인류의 기록유산을 풍부하게 만들어 왔지만 그 경계를 놓고 논쟁도 끊이지 않았는데 오래전 책에서 읽었던 어느 석학(碩學)의 한마디가 뇌리에 남아 있다.
“하나의 사건이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으로 물들면 신화가 된다”
‘역사’란 태양처럼 밝은 조명 아래 낱낱이 분석되고 오랜 검증의 시간을 견딘 엄격한 학문의 영역이며 ‘신화’는 달빛이 주는 낭만적 상상력으로 버무려진 예술의 범주(範疇)라는 의미다.
드라마 속 가공(架空)의 역사들
필자(筆者)가 방송사에 재직하던 시절, 사극(史劇)은 시청률이 보장된 ‘효자(孝子)’ 컨텐츠인
동시에 한류(韓流)의 물꼬를 튼 문화 수출품이었다.
그러나 기자로서의 직업의식 탓인지 동료 PD들이 만든 작품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릴 때가 적지 않았다.
종이가 도입되기 전 죽간(竹簡)이나 목간(木簡)에 글을 쓰던 시대의 주인공이 현대의 첨단 패션을 방불케 하는 의상과 장신구를 두르고 있고 방금 ‘청담동 뷰티샾’을 다녀온 듯 우윳빛 피부에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이 없다.
의녀(醫女) 장금(長今)은 실록에 딱 한번 이름이 등장할 뿐 임금의 목숨을 살리고 나라도 구한 그녀의 ‘절대 미각(絶對味覺)’은 순전히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것이며 궁중 사극의 단골 인물 장희빈(張禧嬪)도 미모만 뛰어난 악행의 화신(化身)으로 묘사 됐지만 실제 기록에는 상당한 학문적 지식에 외국어까지 능통했던 ‘조선의 알파녀’로 알려져 있다.
사극을 다큐멘터리의 기준으로 비판할 의도는 결코 아니며 간혹 드라마나 영화를 진짜 역사로 오인할까 걱정한 때문인데 사실 심각한 우려는 다른 곳에 있다.
이념과 정치에 갇힌 근, 현대사(近, 現代史)
극심한 분열과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는 역사학계도 예외가 아니며 특히 근, 현대사를 둘러싼 논쟁은 이념과 진영의 대리전 양상이다.
식민지배와 참혹한 전쟁을 거친 세계 최빈국에서 10대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부정(否定)되기도 하고 특정 사건에 대해 비판과 검증이 법(法)으로 금지되는 일도 벌어진다.
역사는 모름지기 시간을 초월해 공개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된 기록들로 채워져야 하며 의도된 성역화(聖域化)는 설익은 신화를 남길 뿐이다
그리고 오늘날 북한에서 그 대표적 사례를 확인하기도 한다.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면 아름답던 달빛의 실루엣도 신기루(蜃氣樓)처럼 사라지고 만다.
총동창회 사무총장 이형관(77.영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