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담한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원제:No Country For Old 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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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2-11-05 00:35 조회 822회 댓글 0건본문
2008년 아카데미 4개 부문 수상작 영화
요즈음도 케이블 TV 영화 채널에서 가끔 보게 되는 미국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원제:No Country For Old Men)는 지난 2008년 개봉과 함께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제에서도 각종 상을 휩쓸며 최고의 영광을 누렸다.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력까지 더해 영화사(史)에 길이 남을 흥행대작으로 꼽히고 있지만 제목만 놓고 보면 엉뚱한 장르로 오해하기 쉬운 영화다.
멕시코와 접경을 이룬 텍사스의 황량한 사막을 배경으로 마약을 거래하던 범죄조직의 총격전에서 양쪽 모두가 전멸한 뒤 근처에 살던 한 남자(조슈 브롤린 扮)가 우연히 현금 수백만 달러가 든 돈가방을 차지한다.
뜻밖의 횡재를 지키려는 남자와 이를 되찾기 위해 추격하는 사이코패스 살인마(하비에르 바르뎀 扮)의 섬뜩한 행각이 영화 내내 이어지는데 살인범을 뒤쫓는 늙은 시골 보안관(토미 리 존스 扮)은 사건 해결능력은 없고 이미 저질러진 범죄현장에서 탄식과 넋두리로 뒷북만 치는 무기력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마약과 돈가방, 충격적인 살육으로 점철된 범죄 스릴러물(物)이 어떻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의 영광을 차지하고 당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는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또 노인문제를 다룬 사회비판 다큐멘터리에나 어울릴 법한 제목이 왜 이 영화에 붙었는지를 아는 사람도 국내에서는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다.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Vyzantium)
이 영화는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코맥 매카시의 2005년 작(作)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조엘 코엔과 에단 코엔, 형제감독이 영상으로 옮긴 작품이다.
소설과 영화에서 제목으로 쓰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아일랜드 출신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W. B. 예이츠의 ‘비잔티움으로의 항해’라는 시(詩)의 첫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 The young
In one another’s arms, birds in the trees,
-Those dying generations-at their song,
The salmon-falls,the mackerel-crowed seas,...
(저 곳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젊은이들
서로를 껴안고 있고, 나무의 새들
-죽어가는 세대들- 노래 부르며,
연어 폭포, 고등어가 우글대는 바다,...)
비잔티움은 현재 터키 이스탄불의 옛 이름.
동서양의 문명이 어우러지고 종교가 교차하면서 세계의 역사를 바꾼 도시다.
기독교의 공인과 함께 동(東)로마제국의 수도로 자리 잡은 뒤 성 소피아 사원을 비롯한 성스러운 상징물들로 가득 차고 역사상 유례없이 예술과 실제의 삶이 일체를 이뤘던 곳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W. B. 예이츠의 관념 속에서 ‘노인’은 살아 온 세월로 삶의 지혜를 터득한 현자(賢者)를, ‘비잔티움’은 관능적 현실과 대비되는 지성과 영원의 세계를 상징한다.
1926년 예순한살이 된 시인은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비극적인 조건을 명상하면서 이상과 현실의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고백하고 있다.
제목의 유래(由來)를 이해하고 다시 영화 속으로 돌아가 보면 살인을 막지도, 범인을 잡지도 못하는 늙고 무기력한 보안관을 주목하게 된다.
감독은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에서 비롯된 갖가지 현대사회의 재앙적 문제들을 아무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냉엄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꼰대’와 ‘틀딱’을 위한 변명
유교적 전통과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오랫동안 가르쳤던 나라에서 기성세대를 향한 불신이 어느 때보다 깊어지고 있다.
SNS에 넘쳐나는 ‘꼰대’니 ‘틀딱’이니 하는 용어들은 단순한 불만과 불신을 넘어 조롱과 혐오의 확산을 걱정하게 한다.
수천년 전 고대 이집트나 수메르에도 존재했던 세대갈등을 지금 우리들만의 문제인 양 유난 떨 생각은 없지만 참혹한 전쟁과 지독한 가난을 딛고 세계 10대 경제강국을 일군 주역들 입장에서는 억울한 노릇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랴? 인터넷과 유튜브가 신세대들에게 대체불가(代替不可)의 스승으로 자리 잡았고 경험과 논리의 영역마저 인공지능에 의존하는 시대가 됐으니 ‘늙은 말(馬 )의 지혜’ 따위의 수사(修辭)가 더이상 통할 리 없다.
100년 전 예이츠가 읊었던 시어(詩語)들을 냉정한 현실로 구체화시킨 코엔 형제의 영상 위에 조만간 법적 경노(敬老)의 반열(?)에 오르게 될 필자의 처지도 오버랩 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노인을 위한 나라’를 찾는 대신 ‘나라를 위한 노인’으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해야겠다.

총동창회 사무총장 이형관(77 영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