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처 정담한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극일(克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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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2-09-05 00:36 조회 638회 댓글 0건본문
꿈같은 한편의 드라마
강산(江山)이 세 번이나 변할 세월이 흘렀으니 벌써 ‘아득한 기억 저편’일 수도 있겠지만
필자(筆者)에게는 여전히 생생한 감동으로 살아있는 장면이 있다.
‘올림픽의 꽃’ 마라톤은 대회 마지막날 폐막식 직전의 메인스타디움에서 월계관의 주인공을 맞는다.
꼭 30년 전인 1992년 8월 필자가 MBC 취재팀으로 파견됐던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그랬다.
작열(灼熱)하는 지중해의 태양 아래 천재건축가 가우디의 숨결이 서린 시가지를 배경으로 펼쳐진 42.195km의 레이스는 반환점을 지나면서 선두그룹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고 33km지점부터는 TV화면이 두명의 동양인 선수를 집중적으로 비추고 있었다.
가슴에 태극기가 선명한 황영조(黃永祚)와 일본의 기대주 모리시타 고이치.
역사적 악연으로 얽힌 두나라의 젊은이의 우승경쟁은 이때부터 더 이상 단순한 마라톤이 아니었다.
한국은 이미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이었지만 모두가 두눈을 부릅 뜬 채 물러설 수 없는 승부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고 그것은 아마 일본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메인스타디움이 위치한 몬주익 언덕을 향해 초인적인 힘으로 막판 스퍼트를 펼치는 황영조와 서서히 뒤처지는 모리시타가 대비(對比)를 이루는 장면에서는 텔레비전 앞의 모든 국민들이 소름 돋는 짜릿함에 환호성을 질렀다.
결국 황영조는 두손을 치켜든 당당한 모습으로 결승테이프를 꾾었고 당시 육상과 수영 등 이른바 기초종목에서 일본에 절대적 열세였던 우리나라의 마라톤 우승은 기적과도 같은 승전보였다.
손기정 신화의 재현
우리는 이미 1936년 베를린올림픽 ‘손기정 신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시상식 사진의 일장기 말살 사건까지 더해 식민지 청년의 자랑스런 영웅담인 동시에 나라를 빼앗긴 슬픔의 상징적 장면 이기도 하다.
황영조의 우승 소식을 전하던 외신들도 56년전 베를린의 챔피언도 ‘일본선수 기테이 손’이 아닌 ‘한국인 손기정’이었음을 새롭게 부각시켰고 두 영웅이 똑같이 8월 9일에 올림픽을 제패한 특별한 인연도 소개 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손기정 선생의 한(恨)을 풀어준 쾌거는 며칠 뒤 광복절을 축제의 분위기로 만드는데도 일조를 했다.
필자는 한국스포츠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에 방송기자로 활동하면서 우리선수들의 통쾌한 승전보를 수없이 지켜보고 뉴스로 전한 바 있는데 ‘숙명의 라이벌’ 한.일전 승리는 누구나 그렇듯이 특별히 짜릿했고 오래 기억에 남았다.
국민들과 함께 기뻐하며 응원했던 그 순간들은 피땀 어린 노력과 실력으로 거둔 것이기에 그 가치를 인정하고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다시 광복절을 보내며
일제 식민지 역사가 끝난지 77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친일(親日)과 반일(反日)로 서로를 가두고 낙인 찍는 일을 반복하고 있고 심지어 ‘죽창가(竹槍歌)’를 외치는 사람들까지 있다.
정치적 목적의 시대착오(時代錯誤)적 구호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공정하고 엄격한 규칙 아래 실력으로 평가 받는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나라의 위상(位相)도 기술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 인정 받는 것이 바로 진정한 극일(克日)의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총동창회 사무총장 이형관 (77 영문)


▲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취재 중인 필자와 MBC 취재팀. 당시 유명했던 백지연 앵커의 모습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