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칼럼] 자유분방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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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3-06-05 00:05 조회 385회 댓글 0건본문

▲ 정재형(88, 사법)
변호사
영남대의 장점은 자유분방함과 강건함이다. 학교 안에서는 못 느끼지만 다른 대학을 방문하거나 그 대학 친구를 사귀어 보면, 그들과 차별되는 영대의 학풍을 쉽게 알 수 있다. 선생님이나 공무원 느낌의 K대학, 세련되긴 하나 끈기는 없을 것 같은 또 다른 K대학의 분위기는 영대생에게 이질적인 것이었다.
대자보는 게시판에만 붙이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이든 강의실이든 복도건 가리지 않고 벽만 있으면 풀칠해서 붙이고 그래서 떼어내지 못하니 그 위에 붙이고 또 붙여서, 멀리서 보면 온통 낙서투성이처럼 보이는 흰 벽. 대동제가 끝난 후 교정에 딩구는 술병과 쓰레기들, 개강 무렵이면 특히 심해지지만 날 좋은 해거름이면 모둠들이 천마로 잔디밭을 점령하고 막걸리를 상자째 쟁여두고 고성방가하며 건배를 들었다.
중앙도서관 앞 민주광장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데모대가 허공을 향해 주먹질을 하면서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지만 살얼음판 같은 살벌함이 흐르는 고시반 독서실에 벌레처럼 웅크린 채 책을 파는 학생들이 있고 당최 그런 진지함은 모른 체하면서 벚꽃그늘 밑이거나 거울못 벤치에서 정담을 나누는 연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교과서보다 복사집에서 구하는 자료가 더 흔했던, 기말고사장에서 담당교수 대신 조교가 감독으로 들어오면 교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그 학기를 마칠 정도로 수업은 뒷전이고 정문 앞 술집이나 당구장에 가야 학우를 확실히 만날 수 있었던, 한여름의 등나무 그늘 밑 부채바람 같았던 청량함과 분방함이 그 시절 영대에 있었다. 그것들이 어디서 왔을까? 겨울이면 나목들과 운동부원들, 고시생들만 개미처럼 줄지어 다니던 넓디넓은 경산교정의 광활함 때문이기도 했을 것 같다.
지금은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한 과목도 소홀히 할 수 없고, 학교 밖의 배움을 위해 휴학해야 하며 인턴이나 해외연수로 스펙을 채워야 하는 후배들도 우리 세대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을까. 기성세대의 권위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포기하면 더 이상 대학일 수 없다는 그 시대정신이 직업훈련이나 스펙관리에 함몰되어 혹여나 쪼그라들거나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닐까. 단색과 획일 같은 것들은 잠시 효험을 보일 뿐 창대함을 잉태할 수 없고 오로지 개성과 자유로움만이 젊은이의 태도라는 교리가 아직도 천마인의 믿음일까. 이런 넋두리가 계란은 나눠 담아야 한다는 식상한 잔소리를 하는 꼰대 선배의 노파심이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