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장사도 트레킹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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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5-02-28 11:34 조회 166회 댓글 0건본문
유판도 (72.정외)
새해 첫 트레킹으로, 멀리 통영 장사도로 떠난다. 전세버스는 깊은 겨울 시공 속으로, 우리를 싣고 내달리고 차창 밖 풍경은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흐르는 것은 세월로, 세월은 자연을 변화시키고, 나 또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하회탈을 닮아가지만 영혼만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오늘도 섬 산행길에 나선다.
배낭 메고 집을 나서면 여행이다. 여행은 눈 앞에 걸어야 할 길이 있고, 새롭게 만날 시간이 있어 가슴 설레게 하는가 하면, 여행지의 풍물과 삶의 실상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인생의 이치를 알게 하며,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게 하기에, 오늘의 트레킹이 나에게 또 어떤 깨침을 줄 것인지의 기대로 마음부터 앞서 내달린다.
오늘의 행선지는 청마기념관을 비롯해서 근포마을 땅굴, 장사도, 칠천량해전공원, 씨릉섬 순이다. 먼저 거제시에 있는 청마기념관(둔덕면 방하2길 6)에 도착하니, 겨울 날씨답지 않게 햇살이 따스한 날씨였다. 이곳은 한국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청마 유치환의 출생지(외가)로, 2000.1월에 기념관 개관 및 생가(초가집)를 복원하였다고 하며, 그의 생애를 더듬어보며 기념관과 생가를 탐방하였다.
청마는 외가인 거제에서 출생하여 진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후 초등하교 입학 전 본가인 통영군 충무로 돌아와 성장하였고, 그 후 부산에서 교직생활을 하였다. 그래서 출생지인 거제에는 청마기념관과 청마거리가 있다. 청마는 통영여중 재직 당시 유부남으로, 21세에 남편을 잃고 외동딸을 홀로 키우고 있던 이영도(시조시인)를 짝사랑하여, 생전 20년 동안 연애 편지를 보냈는데, 그 중 6.25 전쟁 이전의 것은 소실되고 남아 있던 것만 해도 5천여 통에 이르렀다고 하니, 정열적인 로맨티스트였든 것 같다. 불행하게도 그는 부산남여상(현 부산영상예술고) 교장으로 재직하던 중 시내버스에 치여 58세의 나이로 유명(幽冥)을 달리했다. 그의 시 세계는 애틋한 서정의 세계에서 웅장한 의지의 세계에 이르는 자신의 시를 통해 한국시의 가능성을 새롭게 열어 보였으며, 그의 시의 특징은 존재의 본질적인 운명인 죽음과 허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기념관 탐방을 마치고, 오늘의 메인 코스인 장사도로 향했다. 장사도는 섬의 지형이 뱀처럼 길게 뻗어 있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유람선으로 10여 분이 소요되는 거리인 장사도에 도착하니, 바라보이는 산 언덕에 동백꽃이란 뜻인 영어 'Camellia'란 대형 글자가 시야에 확 들어오기에, 외국인을 배려한 것인지, 유식함을 과시하려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하선하여 오르막길을 오르니, 마치 남국에 온 기분 같다. 과연 동백꽃 천국이라 할 만큼 섬 전체가 온통 동백숲으로 우거져 있었다. 한겨울인 데도 섬 전체가 상록수이다 보니, 마치 여름 풍경에 날씨는 냉방장치를 한 것같은 이색적인 묘미에 한층 더 즐거움을 더했다.
섬 탐방은 안내도에 따라, 중앙광장, 무지개 다리, 다도 전망대, 온실, 섬아기집, 야외공연장, 작은 교회, '별에서 온 그대' 촬영지 등 총 10여 곳이 넘는 볼거리를 차례로 섭렵하면서, 과연 천혜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인간이 공존하는 문화해상공원으로 조성한 것에 대해 감탄하며, 마음껏 사진에 담으며 즐겼다.
장사도 트레킹을 마치고 마지막 행선지인 거제 칠천량해전공원과 씨릉섬으로 갔다. 이곳은 거제도와 칠천도 사이의 해협인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이 임진왜란·정유재란 가운데 유일하게 대패한 해전의 의미를 되새기는 패전기념공원이다.
당시 조정은 당쟁으로 이순신을 하옥하고 원균을 수군통제사로 임명한 상태로, 원균은 이 전투에서 전함 180척 중 150척이 침몰되고 1만명의 병사를 잃고 육지로 탈출하여 도주하던 중 왜군의 추격을 받아 전사하였다.
칠천량해전공원을 지나 출렁다리로 연결된 무인도인 씨릉섬으로 건너 갔다. 이 섬은 출렁다리란 매개체와 함께 바다 조망과 해풍 그리고 솔숲 로드 등 삼박자를 고루 갖춘 명품 산책로로서, 많은 탐방객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으며, 걷다보면 어느새 번잡한 일상사를 잊고, 마음이 편안해지며 머리가 맑아진다.
씨릉섬을 끝으로 오늘 트레킹을 마치고, 현지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귀로에 올랐다. 아름다우면서도 처연한 석양도 바다 건너 서산으로 넘어가고 어둠이 찾아들었다.
오늘 트레킹은 문학기행과 역사 탐방, 문화 공원, 산책로 걷기 등 영육(靈肉)을 동시에 만족시킴과 더불어 삶의 의미를 찾게 하는 동기 부여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 삶의 실상을 보면, 멈출 줄 모르는 욕망으로 오로지 성공하고 출세하거나, 소유하고 누리기 위해 앞과 위만을 바라보며 살다보면,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모르거나, 자신을 잊고 사는 것이다. 이렇게 인생을 소진하다가는, 자기 인생을 인간답게 제대로 사용해 보지도 못한 채, 한 세월 다 보내고 난 후에야 세월의 무상함과 인생의 허무함을 한탄하며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는 것이다.
자연의 현상을 보면, 시간은 폭력적이다.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와해시킨다. 아무도 저항할 수 없다. 인생도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것으로, 이런 사실을 수시로 자각한다면 자연히 후회 없는 삶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삶의 엔딩에서 내가 어떤 장면 속에 있을 것인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마지막을 맞고 있을 것인지를 한번 상상이라도 해 본다면, 여생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 이 트레킹에서 느낀 것은 인생은 이론이 아닌 야전으로, 쇼핑보다 캠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되, 세상사에 너무 집착하거나 매달리지 말고, 남을 바라보는 대신, 나를 바라보고, 나를 발견하고, 나를 깨닫고, 나다운 삶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며, 행복하기 위해서는 오늘 이 트레킹처럼 나를 잘 데리고 놀아야 할 것이다.
▲경남 통영에 위치한 장사도해상공원![]()
▲트레킹 길에서 만난 해질녘 남해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