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노트] 편집국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영대신문 기자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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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5-07-29 13:40 조회 115회 댓글 0건본문
조현희(19. 경제금융)
· 총동창회보 편집위원
· 영남일보 기자
학생·기자 경계서 고초…모교 애정으로 버틴 3년
위기의 대학신문…활동 지속 가능한 시스템 필요
▲좌측부터 2015년 열린 영대신문 사진전, 지난해 영대신문 현역 기자들의 편집회의 모습 [출처:영대신문/ 교육방송국 UBS]
인생엔 변곡점이 있다. 필자는 학생지원센터 306호의 문을 연 순간일지 모른다. 2019년 경제금융학부에 입학해 2022년 언론사에 입사했다. 언론인이 된 배경에는 학보사(學報社) 기자로 3년간 활동한 경험이 있다. 학생지원센터 건물 3층 ‘영대신문 편집국’ 간판이 걸린 문을 두드린 건 모교에 입학하고 두 달쯤 됐을 때였다. 반복되는 생활에 마침 심심했던 참이었고, 궁금했다. 신문사란 대체 어떻게 굴러가는지, 신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렇게 호기심으로 들어간 영대신문은 생각보다 훨씬 치열하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곳이었다.
학보사 기자의 일상은 평범하지 않다. 모든 기자들이 다 그렇겠지만, ‘마감’이라는 무시무시한 시한폭탄 앞에서 늘 시간에 쫓긴다. 신문 한 호엔 기자들의 숨 고를 틈 없는 분투, 수십 통의 전화, 수백 분의 녹취, 수십 번의 퇴고가 다 들어 있다. 그런 학보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러했다.
편집회의때 발제할 보도 소재를 찾기 위해 노트북을 켠다. 각종 자료를 찾아보지만 죄다 평범한 내용뿐이라 별 소득은 없다. 학생회 간부를 하는 동기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요즘 재미난 소식 없냐고. 돌아오는 대답은 “없지 뭐. 매일 똑같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평범한 공지라도 샅샅이 살핀다. 건물에 붙은 포스터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렇게 하나를 건지면 직속 선배에게 보고한다.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오면 첫 난관은 넘은 것이다.
편집국 중앙 책상에 모여 각자 가져온 기사 아이템을 꺼낸다. “뻔하다” “편향적이다” “시의성이 떨어진다” 등의 피드백이 오간다. 이 과정에서 몇몇 아이템은 보도 방향이 수정되거나 폐기되기도 한다. 폐지통에 버려진 발제문들을 보면 괜히 마음 한켠이 씁쓸하다. 아이템이 통과되면 곧장 취재에 돌입한다. 자료를 조사하고, 전화를 돌리고, 인터뷰를 요청하고, 현장에 간다. 슬프게도 모든 일이 계획대로만 흘러가진 않는다.
학생들의 생각을 묻기 위해 캠퍼스에서 로드 인터뷰를 요청한다. 십중팔구는 고개를 젓거나 빨리 자리를 피한다. 이 경우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어렵게 인터뷰 약속을 잡고도 당일 취소되는 경우도 있고, 현장에 가도 유의미한 정보를 얻지 못할 때가 있다. 취재원과 아예 연락이 닿지 않으면…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보통 인터뷰 시간을 취재원 일정에 맞추다 보니 수업 시간이랑 겹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간혹 신문 나가기 전에 기사 먼저 보여줄 수 있냐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내가 학생인지 기자인지 모르겠다는 회의감이 든다.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취재원을 만난 날엔 이 일이 꽤 괜찮은 일처럼 느껴진다.
마감 주에 돌입하면 편집국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밤새 이어진다. 남들은 시험 기간이 싫다는데 영대신문 기자들은 ‘꿀’ 같다고 한다. 마감이 없기 때문이다. 편의점 컵라면 냄새가 퍼지고, 누구는 의자에 기대 잠시 눈을 붙인다. 기사를 쓰고 인쇄해 직속 선배에게 넘긴다. 다른 기사를 작성하며 기다리다 보면 전에 넘긴 기사의 교정지가 돌아온다. 문장은 물론이고, 단어, 심지어는 조사 하나까지 빨간 줄이 죽죽 그어져 있다. 그러면서 ‘질문 지옥’에 갇히게 된다. “이건 왜 이렇게 썼어?” “여긴 근거가 부족해” “팩트는 확인했어?” 등의 지적이 따라붙는다. 빨간 줄보다 무섭다. 설명하다 보면 내가 뭘 알고 모르는지 드러난다. 수정을 거듭하다 보면 처음 쓴 문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글이 나온다(사실 선배가 써준 글에 가깝다). 아날로그 시대가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손으로 직접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면 손목이 나갔을지 모른다. 그렇게 새벽을 넘기고 나면 어느새 해가 뜬다.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으면서도, 시한폭탄 하나를 헤치웠다는 생각에 뿌듯해진다.
기사가 모두 마감되면 편집부 기자들이 비상이다. 지면 레이아웃을 짜고, 사진을 선정하고, 제목과 캡션을 조정한다. 신문 초안이 완성되면 교정위원 선생님, 주간·부주간 교수님이 편집국에 방문해 기사와 지면을 최종 점검한다. 피드백을 반영해 수정한 뒤 완성된 파일을 중앙일보 사업장으로 전송하면, 신문 제작은 ‘공식적’으로 끝난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은 종이신문을 잘 보지 않는다. 인터넷 기사만으로는 부족하다. 디지털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그래서 영대신문도 변화를 시도한다. 카드뉴스 등 요약 콘텐츠를 SNS에 올리면 신문 한 호가 ‘진짜’ 끝이 난다.
이렇듯 영대신문 활동은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매번 이번 호만 끝내고 그만둬야겠다 다짐했다. 늘 마감과 불안에 허덕였다. 수업을 듣는 동안에는 학생이지만, 취재를 나가면 기자로서의 책임이 따라붙었다. 학내의 민감한 사안을 취재하면서 동시에 학점을 걱정해야 했다. 그 경계에서 중심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때로는 정체성의 혼란까지도 따라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매번 다시 노트북을 켜고 기사 아이템을 찾았다. 그렇게 3년을 이어갔다. 영대신문 활동을 계속한 이유를 지금 와 생각해보면 ‘모교에 대한 애정’이었다.
영대신문은 ‘영남대 구성원의 자치’를 위해 존재한다. 캠퍼스 내부를 가장 가까이서 관찰하고, 구성원들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때로는 대학 본부와의 긴장 관계를 감수하며 균형을 잡는 조직이다. 기성언론이 다루지 않는 학내 현안, 학생들의 시선, 대학사회 변두리에 있는 목소리를 담아내며 학교의 역사를 기록한다. 필자가 영대신문 활동을 이어간 것도 결국 이 점에 있다. ‘학보를 보면 그 대학의 학풍이 느껴진다’는 말이 있는 만큼, 영남대의 역사를 잘 기록하는 것은 모교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언론의 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영대신문도 마찬가지다. 대학 재정 상황, 종이신문 및 학생사회에 대한 무관심 등의 문제들이 중첩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영대신문 기자들은 모교에 대한 애정과 기자라는 사명감으로 학교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려 하지만 쉽지 않다. 학생과 기자의 경계에서 많은 희생을 요구받는다. 더욱 많은 기자가 활동을 원활히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후배 기자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모교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길 기대한다.

▲영대신문 1656호(2019년 11월 25일 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