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노트] 이메일 만들기부터 AI 활용까지..대격변기를 보낸 90년대 학번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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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5-06-24 09:32 조회 312회 댓글 0건본문
우성덕 (98.언론정보)
매일경제신문 사회부 차장
영남대동창회보 편집위원
대학 과제가 이메일 만들기였던 시절 IT 등장으로 캠퍼스 안팎 급속히 변화
아날로그, 디지털 모두 경험한 첫 세대 중년기로 접어들자 이제는 AI 기술 등장
점점 새로운 기술에 대한 거부감 크지만 AI문맹 벗어나려면 "잘 묻는 능력" 키워야
대학 경쟁력도 이제는 AI 인재 육성에 달려 영남대도 새로운 정체성과 방향 모색해야
▲영남대 신입생 입학식(98년)과 학생들이 수업 모습(2002)
“내일까지 이메일을 만들어 제출하세요”
1998년 3월 필자가 본교 매체정보학과에 입학한 후 첫 과제는 ‘이메일 만들기’였다. 당시 ‘뉴미디어론’이란 전공 과목의 첫 과제였다. 뉴미디어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메일이 필요하다”는 교수님의 주문이었다. 98학번인 필자가 입학할 당시 매체정보학과 정원은 40여명이었는데 대부분 이메일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고로 매체정보학과는 1997년 개설돼 2003년 언론정보학과로 변경된 후 현재는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로 바뀌었다.
그렇게 만든 필자의 아이디는 majormedia.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가 되겠다”는 ‘긍정적 몽상가’의 열망을 담아 처음으로 ‘아이디’를 갖게 됐다. 27년 전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만들었던 이 아이디는 지금도 로그인이 가능하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메일은 생소한 존재였다. 앞으로 모든 문서와 사진 등은 전자우편인 이메일로 주고 받을 거라는 것을 필자는 쉽게 상상하지 못했다. 누군가에는 ‘얼리어답터’의 표상이었지만 누군가에는 단어 조차도 낯설었다. 골뱅이가 뭐냐부터 시작해서 이메일 주소가 있냐고 물을 정도였다. 이메일에 관한 에피소드는 당시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단골 소재였다. 2001년 개봉한 영화 ‘두사부일체’가 기억에 남는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계두식에게 한 라이벌 조직원이 ‘계사장 이메일 주소는 있지“라고 묻자 ”서울시 중구 명동...“이라고 답해 웃음거리가 되는 장면이 떠오른다. 또 ”다음에 카페 하나 개설하려구요“라고 하자 ”그게 우리 구역이냐“고 되물어 망신을 당하는 장면도 웃음을 자아냈다.
이메일이 생소했던 1998년..당시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있어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대전환이 일어난 격변기였다. 경제적으로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많은 기업들이 파산했고 정리 해고 등의 칼바람이 불면서 큰 시련과 고통이 불어닥친 해였다. 정치적으로는 헌정 사상 첫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사회 문화적으로는 X세대의 등장과 일본 문화 개방 등이 본격화된 시기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를 몰고 온 건 정보화 사회의 출현이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쓴 ‘제3의 물결’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그가 예측한 정보화의 물결이 사회 곳곳에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캠퍼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쓰나미의 물결은 과거에 보지 못했던 캠퍼스 안팎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놨다. 캠퍼스 안에서는 이메일을 통해 과제를 제출해야 했고 레포트들도 PC의 한글 자판을 쳐가며 한글 워드 파일을 사용해 제출하기 시작했다. 삐삐를 확인하기 위해 캠퍼스의 공중 전화마다 긴 줄을 섰던 풍경도 스마트폰의 전신인 PCS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휴대폰 문자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캠퍼스 밖도 마찬가지였다.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PC게임이 나오면서 당구장 문화가 일순간 PC방 문화로 바뀌었고 e스포츠 리그가 열리면 친구들은 자취방에 모여 월드컵 경기를 즐기듯 e스포츠 게임에 열광했다. 비대면 대화라는 것도 대중화됐다. PC통신은 저물었고 다양한 채팅 플랫폼들이 생겨나면서 채팅을 통해 친구나 이성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이메일을 만들 때만 하더라도 캠퍼스 안팎 생활이 이렇게 순식간에 바뀔지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필자와 같은 90년대 학번들은 IT기술의 발달과 변화 속에서 “거부하면 도태된다”는 두려움을 안고 캠퍼스 생활에 적응해 온 세대였다. 10대 시절에는 아날로그로, 20대 이후에는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야 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를 모두 경험한 최초의 세대..그들이 바로 90년대 학번들이다.
90년대 학번들은 이제 인생의 중년기로 접어들었다. 중년기는 사회적으로 자리잡은 뒤 국가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는 시기다. 급속히 진화하고 발달하는 IT기술의 변화 속에서 치열한 취업문을 뚫고 20~30대를 보낸 후 이제 좀 적응하는가 했더니 ‘제4의 물결'이 또다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 중심이 바로 생활 깊숙히 파고 든 'AI(인공지능)'다. AI 활용 능력이 필수 조건이라며 빨리 배우고 활용하라고 강요 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AI 문맹이 된다며 경고까지 하면서 말이다.

▲사람 대신 AI가 일하는 이미지
필자가 몸담고 있는 언론사 역시 마찬가지다. 기자에게도 AI 활용 능력을 주문하고 있고 유료 아이디까지 발급해 주면서 업무에 적극 활용하라고 권장한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기술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만 20대처럼 신기술에 빨리 적응하는 게 그때처럼 쉽지는 않다. 그렇더라도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인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이를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AI 플랫폼을 사용해 보니 기자 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질문을 하면 필요한 자료를 검색하고 필요한 정보만 꼭 찝어 찾아주니 업무 편의성은 훨씬 높아졌고 취재 시간도 단축돼 희열을 느낄 때도 많아졌다. 물론 뒤늦게 배운 만큼 필자가 AI를 통해 할 수 있는 능력은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AI시대 필요한 인재는 “잘 묻고 신속하게 판단하는 능력”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프롬프트 엔지니어처럼 잘 묻는 기술적 능력을 갖기에는 필자가 넘어야 될 기술 장벽이 여전히 높다. 어디까지 배우고 알아야 되는 지 필자와 같은 중년들은 감도 잘 오질 않는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건 20대처럼 치열하게 배워야 된다는 간절함은 부족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인생 말년으로 접어들 때쯤 국가 경쟁력은 AI 인재들이 좌우할 것이다. 전 세계 대학마다 지금 AI 인재 육성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고 있는 대학이 지금 미국의 미네르바 대학이다. 2014년 개교한 미네르바 대학은 AI 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 혁신을 선도하는 대학으로 유명하다. 최근 세계 혁신 대학순위에서도 3년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해 주목을 받았다. 이 대학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교육 시스템을 도입했고 캠퍼스와 강의실 없이 학생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현장 실습’을 하는 커리큘럼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미네르바 대학의 밴 넬슨 설립자는 AI 인재상을 “잘 묻고 빨리 판단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외우는 지식은 오래 가지 못한다며 창의와 경험을 중시하는 교육이다.
영남대 역시 명문 사학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AI 인재 육성에 고삐를 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외출 총장이 지난달 열린 개교 78주년 기념식에서 "AI, 로봇 등 산업이 재편되는 변화의 시대에 대학의 새로운 정체성과 방향을 모색하겠다"고 밝힌 점은 다행스럽다. 앞으로 탄생할 AI 인재들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그리고 AI시대 패권은 누가 손에 쥐게 될 지 지금으로선 상상하는게 쉽지 않다. 27년 전 필자가 이메일을 만들 때 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