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정규 교수의 마음처방전] 2.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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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5-05-19 13:39 조회 104회 댓글 0건본문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자 과장, 동국대학교 심신의학연구소장.대통령 자문기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교육부 위(Wee)닥터 자문의 대표, 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이사장, 한국생명연대 공동대표, 경상북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장 등을 맡고 있다.
또한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동창회장과 영남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운영위원·미디어위원장을 맡으며 동문 사회에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정신의학과 인문학을 융합한 치유적 메시지로 널리 알려진 ‘힐링닥터 사공정규’라는 닉네임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차례
1. 열심히만 살면, 정말 행복할까?
2.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까?
3. 왜 나는 이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할까?
4. 나는 여전히 나만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까?
“왜 사니?”, “왜 살아?”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다른 사람에게 “왜 사세요?”와 같은 질문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아무리 선의로 물었다 하더라도, 상대방에게는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면 어떨까?
“나는 왜 사는가?”
금세 명쾌한 답이 떠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태어났으니까 산다”거나, “그저 마지못해 산다”고 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질문을 달리해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어릴 적 읽었던 동화들의 마지막 단골 문장은 늘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였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라고 강조했다. ‘행복하게 살기’는 시대를 막론하고 인류의 가장 오래된 화두다. 원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삶은 종종 힘듦의 연속이다. 간신히 버텨내고 이제 좀 편안해졌나 싶으면, 어김없이 새로운 난관이 찾아온다. 부자든 가난하든, 나이가 많든 적든, 권력자든 평범한 사람이든, 모두 각자의 어려움을 안고 산다.
나훈아의 노래 〈테스 형!〉에는 무려 2,500여 년을 거슬러 소크라테스가 소환된다.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이 노랫말처럼, 우리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그 이유는 인생의 디폴트값(default value), 즉 기본 설정이 ‘고통’이기 때문이다.
고통에서 예외인 인생은 없다. 인간에게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고통이 없는 삶일까? 아니다. 행복을 인생의 기본값으로 착각하는 순간, 오히려 불행이 시작된다.
항상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불행한 것일까?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인생의 기본값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고통이 가시거나, 잠시라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이렇게 본다면 하루에도 몇 번은 소소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행복은 우리 삶의 목적일 수도 있지만, 생존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행복감을 느끼는 ‘크기’보다 ‘빈도’가 더 중요하다. 그러니 행복을 멀리서 찾으려 하지 말고, 일상 속 순간들에서 발견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특별하고 큰 일이 있어야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런 착각 속에 사는 것은 아닐까?
불교에서는 인생을 ‘고’(苦)라고 말한다. 이 ‘고’를 현대 정신건강의학의 언어로 풀어보면, 그것은 곧 스트레스(stress)다. 모든 것이 고통이라는 ‘일체개고’(一切皆苦), 곧 삶 전체가 고통이라는 뜻이다. “삶이 있는 곳에 고통은 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고통은 항상 존재하며 피할 수 없다.
고통에 관한 유명한 말들을 한번 살펴보자.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곧 살아 있다는 증거다.” “고통이 없다면 얻는 것도 없다.” “살면서 고통을 못 느끼는 것이 가장 슬픈 일이다.” 이 모든 말들은 ‘고통 없는 세상’이야말로 오히려 불행한 인생임을 역설하고 있다. 물고기는 물이 없으면 헤엄칠 수 없다. 헤엄치기 위해서는 물이라는 ‘저항’이 필요하다.
새는 공기가 없으면 날 수 없다. 날기 위해서는 공기라는 저항이 필요하다. 인간 또한 고통 없는 삶을 살 수 없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고통이라는 저항이 필요하다.
우리는 거대한 고통의 바다에서 태어났고, 좋든 싫든 결국 이 바다를 건너야만 한다.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삶과, 고통 속에서도 자유롭게 유유히 헤엄치는 삶은 분명 다르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을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기본값이 고통임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향해 친절히 마주 서면 된다. 어떤 사람에게 누군가가 강제로 “영하 20도의 날씨에 밖에 나가 두 시간을 서 있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고통이고, 견디기 힘든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영하 20도의 날씨에 밖에서 두 시간을 서 있으면, 정말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본인이 선택했다면, 그 추위는 더 이상 큰 고통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희망이 되고, 행복이 될 수도 있다.
수동적으로 주어진 고통은 그 자체로 고통이지만, 스스로 능동적으로 선택한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고통을 어떻게 인지하고, 어떻게 해석하며,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가 핵심이다.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고통은 행복이 될 수도 있고, 불행이 될 수도 있다. 고통 그 자체는 행복도 불행도 아니다.
고통을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은 갈린다. 고통을 다루면 그것은 행복이 되고, 고통에 짓눌리면 그것은 불행이 된다. 고통은 자기실현의 화두이자, 더 큰 자아를 담아낼 수 있는 기회다. 고통을 마주하고, 그것을 다루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하며, 그 성장의 여정 속에서 행복이 찾아온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고통 자체가 아니라,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지금 고통스러운가요?
인생의 기본값이 고통이기에, 그 고통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고, 그 고통 속에서 현재 이 순간 ‘존재(being)’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우리가 미래를 위해 ‘무엇이 되기(becoming)’ 위해 달릴 때,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그 달림에 몸을 맡길 수 있다면,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처럼, 인생의 고통도 잊을 수 있고, 심지어 즐길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이다.
36년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와 상담을 이어온 ‘힐링닥터’ 사공정규 교수. 1,000회가 넘는 정신인문치유형 이야기 강연과 즉문즉답(卽問卽答)을 통해, 수십만 명의 마음에 울림과 변화를 일으켜온 그가 전하는, 뼈를 때리되 마음을 살리는, 뇌과학 기반의 실전 마음처방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