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문환동문,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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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3-06-05 00:00 조회 2,462회 댓글 0건본문

친구여
안문환(65.법학.(주)순흥 대표)
어느 날 문득 목련꽃잎 같은 새 소식(청첩장)을 받아들었다. 까마득하게 잊었던 친구로부터다. 나를 잊지 않고 있다는 친구가 너무나 고마웠다.
낙엽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조용한 산책로를 걷기위해 집을 나섰다. 발에 밟혀 신음하는 바스락거림을 들으며 내가 살아 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늦은 밤 혼자 나와 거니는 뒤뜰에서 바라 본 시내의 야경, 밤하늘에 희미하게 나타난 달무리에서도 우리들이 아직 숨 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이지 큰 도리(大倫)는 못할망정 고향처럼 푸근한 친구들을 좋아해서 여기저기 모임에 자주 나가 때로는 헛소리에 가까운 우리들의 '철학논리'에 목청을 돋구기도 했다. 끝날 때는 으레 친구의 도움으로 택시에 태워지고 집에 들어오면 마누라 잔소리에 한숨짓는 법인(汎人)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시고 이용해 주세요 ㄸ ㄸ ㄸ" 이런 신호음을 들을 때는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없으며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창섭아, 현기야, 성종아, 정선아 그리고 동서 철강아 정다운 이름들 지금 어디 있느냐 생각할 때마다 답답하고 보고 싶구나!
몇 올 남지 않은 머리는 염색이라도 한다지만 눈썹은 어찌할꼬? 또 자꾸 흘러내리는 눈두덩은 누구에게 하소연하며 옆 사람의 작은 소리 안 들리는 것은 누구에게 부탁해 치료할 수 있을까?
학창시절 돼지털 구두 솔 같은 머리 긁어서 앞자리 윤덕홍 머리 위에 선산에 잔디씨 뿌리듯 장난질 치던 그때도 엊그제 같구나.
창섭아! 양재 노래 연습실에서 장장 6시간이나 질러대던 그날을 기억하고 있겠지?
종선아! 효식이와 하산하다 길 잃고 헤매던 그 금오산은 잘 있는지 묻고 싶구나. 번개처럼 지나가 버린 지난날들의 기억들이 자꾸 머리 속에서 되새김되는 것은 어인 일일가? 어제 그제 일은 아득한 옛날 같고 10년 20년 전 일은 어제 일 같으니 선입 선출 법인가? 우리의 기억은 여전하구나.
생각나는 것은 종친회다, 로터리 월례회다, 직장 동우회다, 동창회 등등 별 영양가 없이 쫓아다닌 것도 뭔가가 끌었는지 봉사인지 아니면 업(業)이였던가? 그 덕분에 내안에서 꺼지지 않는 꿈을 꾸며 64km의 안전속도로 굴러 가고 있구나. 친구들은 어디 쯤 가고 있을가? 누군가 말하기를 자기 나이에 0.7을 곱하면 지금 이 시대의 본 나이가 된다고 하더라. 그럼 이제야 불혹(不惑)을 겨우 지난 셈이니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상처가 추억이 되고 추억은 다시 별이 된다고 한다. 괜스리 여의도 아저씨들 나무라기 전에 나부터 좀 더 겸손해지고 정직해져야겠다. 옛날 엔 약간 문제아로 분류된 적도 있지만 그렇기에 특히 자기 자신에게 너무 너그럽고 관대하지 말고 냉정하게 평가하고 비판해야 내 자식과 또 그의 자식이 그래도 나를 알아주고 내 존재를 인식해 주는 세상이 되었다.
폭염과 축축한 장마와는 반대로 마음만은 건조해지지 않도록 포도주 우정과 단풍잎 낭만을 나누고 있다. 참이슬 같은 영롱한 인생은 아니더라도, 제대로 하는 것 하나 없는 보잘 것 없는 인생 같지만 상식대로 살아가고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사는 것이 소인배의 철학이자 삶의 목표다.
한때의 키 큰 의자도, 잘 굴러가는 눈치 빠른 기사가 몰아주던 리무진도, 상냥하고 어여삐 웃어주던 비서 아가씨의 미소도 내려놓으시고 잊으셔야 된다. 어제에 살지 말고 오늘의 삶에 만족하려고 애써본다. 내가 말하기 전에 남의 말에 귀 기우리고 남 앞에 성큼성큼 걸어가지 말고 누군가의 뒤에 서서 천천히 걸어 가렵니다. 빨리 가는 것이 이기는 게 아니고 천천히 가지만 바른길로 가는 것이 옳은 삶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맡겨진 일에 충실하면 꿈꾸는 희망이 늘 내곁에 머무는 축복으로 다가온다.
밤하늘에 희미한 달무리 속에서 학창시절의 친구들 한 사람 한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중얼대보니 벌써 자정이 되었다. 세월 따라 잘 흘러 여기까지 왔지만 내 사랑하는 친구들이 사는 날까지 아프지는 발고 행복하게 늙으시기를 두 손 모아 빌어본다. 10.6+
〈이 수필은 안문환동문(65.법학)의 '아세아문예' 신인상(수필부문) 당선작으로 '아세아문예' 2012년 겨울호에 게재된 것이다. 安동문은 당선소감에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이름에 '文 (문)'자가 들어 있어 반짝이지는 못해도 홀대받지는 말고 작지만 오래도록 편하게 기억되는 이름으로 남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安동문은 한미은행(現한국씨티은행)지역본부장과 국제로타리 남안양클럽회장을 역임했다〉






